누구나 이런 상상을 해봤을 것 같다. 꿈의 라이브러리 말이다. 원하는 작품들을 한데 모아놓을 수 있다면, 그 영화박물관은, 그 도서관은, 그 미술관은 어떤 공간이며 그곳의 입주자들은 어떤 작품들이 될 것인가. 이탈리아의 예술평론가 필리페 다베리오는 상상박물관을 짓는 지적유희로 한권의 책을 써냈다. 원하는 그림들을 호명해 한자리에 모아놓고 방의 유형에 따라 분류했다. 안티카메라, 생각하는 방, 도서관, 놀이방, 부엌, 침실, 음악실, 예배당과 정원… 지하부터 꼭대기층에 이르는 건물 한채가 거대한 화폭이 된다.
박물관에 들어가 가장 먼저 보이는 공간인 안티카메라가 출발점이다. 영어로는 홀이라고 번역되는 안티카메라는 만남의 공간과 동선의 중심 역할을 한다. 직각으로 되어 있는 계단 아래에는 둥그런 그림 하나가 어울리지 않을까. 다베리오가 이 자리에 선택한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 유일하게 이동 가능한 작품인 <톤토 도니>다. 이 그림의 여주인공 격인 인물은 작품을 위탁하고 구입한 아뇰로 도니의 아내로,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같은 주제의 그림이 이후 보티첼리에게도 맡겨진다. 두 작품 다 원형으로 그려졌지만, 다베리오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선택하며 그 이유를 ‘건축적’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보티첼리의 그림을 같이 실었는데, 그러고 보니 드럼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온 듯 원형 안에서 둥글게 말려있는 보티첼리와 비교할 때 미켈란젤로쪽이 액자 밖의 공간까지 하나의 화폭으로 삼듯 안정적인 구도를 가졌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이동하며 그림들을 만나게 만든 게 바로 <상상박물관>이다.
그림에 관한 책만으로 집을 한채 지을 만큼 많지만 <상상박물관>은 역사와 문화 전반에 박식한 저자가 꾸민 하나의 가상 박물관을 둘러보는 방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누군가의 저택에 초대받아 수집물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감상 중심의 에세이가 아니라는 점도 다른 책들과 차별점. 참고로 이 책의 진면목은 그림만큼이나 글에 있기 때문에 빽빽한 글줄 읽기를 감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