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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스며드는 사랑 이야기
이후경(영화평론가) 사진 백종헌 2013-07-10

<발칙한 로맨스>(가제) 권수경 감독-캐스팅 중

제작 (주)스튜디오후크 / 감독 권수경 / 촬영 김준영 / 미술 양홍삼 / 출연 미정 / 크랭크인 9월 말 / 개봉 미정

시놉시스 무역회사를 다니는 계희는 최연소 과장에 사내에서 제일 잘나가는 연하남과 열애 중인 33살의 OL(오피스 레이디)이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연하남에게 차인 뒤 방황하던 그녀는 어느 날 그와 다시 잘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19금 사진을 보내는데, 그것이 거래처인 일본 전통 주류회사 사츠마 소주 CEO 재길에게 잘못 전달되고 만다.

여자, 남자, 술. 이 세 가지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의 가짓수는 무한할 것이다. 그중 9월 크랭크인을 앞두고 캐스팅에 들어간 로맨틱코미디 <발칙한 로맨스>(가제)는 어떤 맛으로 완성될까.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지만 연하남에게 차인 뒤 늪에 빠진 계희의 짜디짠 눈물로 시작해 달콤한 눈맞춤으로 끝날 것은 빤하더라도, 이 영화만의 레시피가 궁금했다. <맨발의 기봉이>(2006) 이후 7년간의 숨고르기 끝에 관객과 재회할 준비에 한창인 권수경 감독을 만나 물었다.

-어떻게 <발칙한 로맨스>로 돌아오게 됐나. =<맨발의 기봉이>를 찍고 나니 계속 휴먼코미디가 들어오더라. 그나마도 준비하던 작품들이 제작에 실패하고 대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었는데, 어쩌다 지인을 통해 이 작품을 의뢰받게 됐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강렬한 끌림이 있었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덤벼보자 싶었다.

-어떤 점에 강하게 끌렸나. =내가 워낙 로맨틱코미디를 좋아한다. 고1 때 TV에서 본 <러브 스토리>에 반해 영화를 시작했을 정도니까. 로맨틱코미디는 그런 멜로 감성 위에 웃음을 얹은 거 아니겠나. 근데 로맨틱코미디는 처음 보면 끝이 보인다. <발칙한 로맨스>는 계희라는 여자가 남자 때문에 가고시마까지 넘어가는 심정을 이해하면 할수록 감성적으로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말대로 계희가 자신의 19금 사진을 되찾겠다고 왜 ‘가고시마’까지 가야 하는지 설득하는 게 관건일 것 같다. =맞다. 그 개연성을 높이기 위해 ‘가고시마’로 무대를 바꾸기도 했으니까. 원래 노덕 감독의 초고에서는 ‘런던’이었고, 내가 처음 받은 버전에는 이탈리아 베로나로 바뀌어 있었다. 거기서 다시 일본으로 바꾼 거다. 일본 정도면 우리도 갈 수 있고, 계희도 갈 수 있을 것 같더라. 물론 계희의 절박함을 잘 담아야겠지만.

-노덕 감독의 <연애의 온도>도 사내연애 에피소드가 주였는데, <발칙한 로맨스>에서는 주류회사라는 설정이 얼마나 요긴하게 사용되나. =사내연애는 하나의 장치일 뿐 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우리의 레퍼런스 포인트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다. 로맨틱코미디를 크게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려는 영화와 서서히 사랑에 빠져가는 영화로 분류했을 때 후자.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매달렸다 헤어지고 다른 남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사랑의 가장 완성된 형태를 그리고 싶었다.

-계희의 캐릭터도 브리짓 존스에 가깝나. =일하는 능력은 아주 뛰어난데 사랑에는 너무나 엉성한 여자다. 한국영화나 드라마 중에서 비교를 하자면 <작업의 정석>의 손예진보다 <환상의 커플>의 한예슬에 가깝다. 근데 그런 여자들이 의외로 많은 거 아나. 조사해보니 능력있는 여자들도 서른이 넘으면 자기가 만나고 있는 남자가 지질한 줄 알면서도 그냥 만난다더라. 헤어지면 다른 남자를 못 만날까봐, 혹은 만나도 또 그만한 시간이나 비용이 들 테니까. 그런 면에서도, 커리어우먼에게 어필하는 현실 코미디가 될 것 같다. 오피스 걸들의 애환이 많이 녹아 있다. 인터넷 게시판을 많이 뒤졌지.

-자칫 그런 에피소드를 나열하다 끝나는 로맨틱코미디도 많다. =장르적으로 로맨틱코미디나 멜로가 겉으로 보기와 달리 만들기는 제일 어려운 것 같다. 그런데 에피소드 나열로도 성공한 로맨틱코미디를 보면 그 단편들을 관통하는 흐름이 있다. 우리 영화 역시 그럴 거다. 촬영도 다른 한국 로맨틱코미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앵글들을 시도하려 하고.

-또 다른 핵심은 로맨틱코미디의 주 관객층인 여성 관객에게 재일동포 재길의 매력을 서서히 설득시켜가는 일일 텐데. =수많은 매력을 깔아놨다. 서른을 넘어가는 여자(계희가 33살이다)들이 남자를 바라볼 때 외모만 보진 않잖나. <미술관 옆 동물원>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사랑이라는 게 불처럼 활활 탈 줄 알았는데, 물처럼 서서히 스며드는 건 줄 몰랐다”고. 아마 이 영화가 그럴 것 같다.

한줄 감상 포인트 한국의 수많은 브리짓 존스들. 그녀들의, 그녀들에 의한, 그녀들을 위한 로맨틱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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