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초이스컷픽쳐스 / 감독 이재규 / 촬영 고낙선 / 미술 조화성 / 의상 정경희 / 출연 현빈 /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 크랭크인 8월 말 / 개봉 2014년 5월
시놉시스 ‘역린’(逆鱗)은 용의 턱밑에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한다. 그것을 건드린 자는 용의 노여움을 사 죽는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자라 우여곡절 끝에 용상(龍床)에 앉은 정조의 역린을 건드리며 시작한다. 즉위 1년째 어느 날 밤, 정조는 존현각에서 자객의 방문을 받고 즉시 수사를 지시한다. 그 격변의 하루 동안 스스로 살아야 하는 정조와 그를 살려야 하는 환관 갑수와 왕을 죽여야 하는 청부살수 을수의 운명이 엇갈린다.
배우 현빈의 스크린 복귀작. 대중에게 <역린>은 그렇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재규라는 이름에 먼저 밑줄을 그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일찍이 퓨전 사극 <다모>로 ‘다모 폐인’들을 양산하고, 최근 <더킹 투하츠>로 ‘고퀄’ 드라마의 기준을 또 한번 경신한 그 드라마 PD 이재규다. 그가 드라마 인생 10년에 잠시 쉼표를 찍고, 100억원대 사극영화로 출사표를 던진다. 영화를 꿈꿨으나 결혼 뒤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드라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드라마를 영화만큼 좋아하게 된 뒤에도 “배우와 스탭들과 대화하며 함께 만들어나가는 영화”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고 했다. 그러니 어쩌면 그는 정조에게 절호의 기회를 하사받은 셈이기도 하다. 그가 사극이 가장 사랑한 조선의 선왕 정조의 삶을 어떻게 재해석할지, 그리하여 영화에 대한 갈증을 어떻게 해소할지, 내년 5월쯤 확인할 수 있을 예정이다.
-드라마 데뷔작도 사극이었는데, 영화 데뷔작으로도 사극을 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오히려 사극은 피하려고 했다. 나중에 나이가 좀더 들어서 다른 관점에서 과거를 조망할 수 있을 때 다시 부딪혀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정도가 다다. 사실 <더킹 투하츠> 전에 게임 속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근미래 SF를 준비 중이었고 초고까지 썼었는데, 입봉 감독이 맡기에는 예산이 너무 큰 영화가 되어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좀더 작고 탄탄한 이야기를 찾던 중 (이현세 화백과 오래 작업해온) 최성현 작가의 시나리오를 만났다.
-정조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드라마나 영화로 가장 많이 옮겨진 왕이기도 하다. 왜 정조였나. =개인적으로도 매력적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던 왕이다. 10살에 궁 마당에서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모습을 봤고 억지로 왕위에 오른 뒤에도 끊임없이 암살 위협을 느꼈는데, 어떻게 미친놈이 되지 않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게 신기했다.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을까, 그를 지탱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고.
-<영원한 제국> <이산> <바람의 화원> <성균관 스캔들> 등과 비교해 <역린>의 정조는 어떻게 다를까. =작가와 내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실제 정조에 제일 가까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실제 모습만으로도 너무나 매력적인 왕이어서 관객이 그런 정조를 오히려 판타지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다. 정조의 매력을 콕 집어서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찜찜하다.
-현빈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현빈의 어떤 모습에서 정조를 보았나. =정조가 겉으로는 여성성이 강하다. 굉장히 섬세하고 선도 가늘다. 하지만 그 안에 엄청난 남성성이 숨어 있다. 정조가 즉위 첫날 내뱉은 첫마디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였다. ‘사도’나 ‘임오년’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었던 시대였는데 그렇게 말했으니 사람들은 피바람이 불겠구나 생각했지.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지닌 보스였던 건 맞다. 현빈에게도 그런 양면성의 공존이 느껴지더라.
-군 입대 이전 현빈은 현대극에서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재벌 2세를 주로 연기했다. 사극 분장을 하고 나온다 하더라도 20대 정조를 연기할 현빈에 대한 여성 관객의 기대치라는 게 있을 거다. =정조는, …몸이 좋은 왕이다. ‘식스팩’도 있었을 거다. (웃음)
-식스팩을 보여주는 왕은 한국 사극영화 사상 처음일 것 같은데. (웃음) =곤룡포에 가려 보이진 않았지만, 실제로 매일 팔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녔을 정도로 스스로를 엄청나게 단련했던 사람이다. 5, 6년 이상 활을 안 쏘다가 활을 쐈는데도 50발 쏘면 49발을 정확하게 중앙에 맞힐 정도였다. 그만큼 무(武)도 뛰어났던 사람이다. 그래서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남성성과 여성성을 아우를 수 있는 배우를 원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같은 성공작도 있었지만, 대체로 사극은 드라마로 푸는 편이 훨씬 경제적으로 용이하지 않나. 그래도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게 맞다고 생각한 이유라면. =말한 대로 막상 부딪혀보니 경제적 측면에서는 영화 사극이 드라마 사극보다 더 빠듯하더라. 세트도 단발성 세트를 지어야 하니까. 하지만 미학적 측면에서는 영화 사극과 드라마 사극의 차이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역린>이 영화적인 이야기에 더 가깝다고 느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하루 안에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점, 다른 하나는 캐릭터들의 상징성과 함축미가 강하다는 점.
-하루라면, 시놉시스에 나와 있는 정유역변이 일어난 날을 말하는 건가. =맞다. 정유역변이 이 영화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정조 1년인 1777년 7월28일 밤, 자객이 정조의 침전 위까지 들어왔던 일이 실제로 있었다. 거기서 출발해 상상을 덧붙여나간 이야기다. 그 하루 동안 왕을 죽이려는 청부살수 을수, 왕을 살리려는 환관 갑수, 살아야만 하는 왕 정조, 세 남자의 과거와 운명이 얽히고설킨다. 하루지만 그 안에 왕의 희생과 애민정신, 형제애, 짐승 같이 살아온 사람도 느끼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 수단화된 인간의 초상,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깨달음이 모두 녹아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다 밑에 깔려 있는 메시지고 표면은 그냥 쉬운 오락영화다.
-<다모>를 비롯해 이후 성공한 사극은 대부분 액션이나 미스터리 등 다른 장르와 혼합한 경우가 많았다. <역린>도 ‘액션’ 휴먼 드라마로 구분돼 있던데. =3분의 2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클래식한 사극은 아닐 거다. 그렇다고 액션이 주라고 말하긴 어렵다. 스릴러적인 요소도 많고, 현실 정치와 관계된 지점도 있을 거다. 그러니 액션, 스릴러, 휴먼 드라마, 정치 드라마, 그 모두라고 할 수도 있겠다.
-드라마 PD 출신 감독이라는 점 때문에 개봉하면 어쩔 수 없이 드라마 사극과 비교를 많이 당할 것이다. =드라마 사극 중 일부는 영화적인 ‘룩’을 시도해 호평받는 경우들이 있는가 하면, 영화 사극 중 일부는 드라마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나. 중요한 건 어떤 매체로 작업하느냐보다 어떤 매체로 작업하든 상관없이 각 장면에서 어떻게 전형적인 연출에서 탈피할 것이냐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역린>의 촬영과 편집의 주된 방향은 어떤 것인가.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레퍼런스 이미지를 바라보며) 전체적으로 미장센은 정갈하게, 호흡은 숨가쁘게 가져갈 생각이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시작해서 점점 정신없이 달려가는 느낌으로. 24시간을 2시간에 눌러 넣고, 그걸 다시 15년 전과 계속 교차해서 보여주는 거니까. 또, 정돈된 느낌의 숏들과 거친 느낌의 숏들을 통해 현재와 과거, 궁 안과 궁 밖을 대비시켜나가다가 어느 순간 그 둘을 만나게 하려 한다. 생각은 이런데, 300만을 넘겨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좀더 클로즈업도 많이 쓰고 컷도 많이 나눠야 하나 계속 고민이다.
한줄 감상 포인트 정경희 의상감독이 한땀 한땀 정성 들여 만든 곤룡포를 입고 이게 최선이냐, 다그칠 현빈. 그의 정조가 이병헌의 광해를 넘본다.
정조가 처소 대신 애용했던 존현각
“이제까지 많이 봐왔던 왕의 공간이 아닐 거다. 정조의 캐릭터를 완성시켜주는 공간이자 그 자체만으로도 정조만큼 중요한 캐릭터다.” <역린>의 중심 무대가 될 ‘존현각’에 대한 이재규 감독의 설명이다. 존현각은 규장각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왕실의 서재로, 실제 정조가 침전 대신 주로 사용했던 생활공간이라고 한다. “평생 암살 위협에 시달렸던 정조는 침전을 지키는 수많은 환관과 나인들을 다 믿지 못했고, 책을 읽으며 밤을 새우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존현각은 정조의 불안한 내면을 대변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공간이다.” 그것이 그가 “배우를 캐스팅하듯 존현각을 설계하”고, “예산이 받쳐주지 않으면 규모를 조금 축소해서라도 반드시 건물 자체를 통째로 지으려는” 이유다. 한편 소실되고 없는 존현각을 그와 조화성 미술감독이 어떻게 재건해낼지도 궁금하다. “사료에 정조가 궁내 건물임에도 존현각을 단청, 제단, 월대 하나 없이 아주 소박하고 정갈하게 지었음이 나와 있다. 하지만 그대로 지으면 영화에서는 너무 밋밋해 보일 수도 있어서 왕의 품격을 대변해줄 수 있는 약간의 장식만 더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