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으로 공개해놓고는 “국정원의 명예”와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라고 강변한 남재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원장의 ‘처신’을 보니, 때가 된 것 같다. 국정원은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 지난 불법 정치개입에 대해 조직을 대표해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이에 대한 야당의 공격에 고작 맞불을 놓고자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라는 경악스러운 짓을 벌인 게 정상적인 국가에서 가능한 일인가. 더 놀라운 것은 이미 전/현 여권 최고위층에서는 진작에 이를 ‘돌려보고’ 대선 등에서 ‘활용’했으며 어떻게 더 써먹을까 ‘만지작’거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가져올 후폭풍조차 가늠하지 못한 오만함과 뻔뻔함이 지금 정권 실세들의 ‘멘털’이라는 점에서 맥이 풀린다. 남 원장이 지키려던 명예와 이익이 무엇일까. 댓글을 단 국정원 직원들의 그것? 어차피 그들이 누군지도 모른다. 시키고 이행하고 은폐했던 이들의 죄과도 달라지지 않는다. 국정조사를 막아보겠다고? 증거 다 없애버려 검찰도 겨우 털어냈는데 더 나올 게 얼마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대선 당시 현장을 덮치려던 야당을 향해 “여성 인권침해” 운운했던 대통령의 ‘체면’ 외에 지킬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지킬 것은 이 정도인데 잃을 것은 가늠도 되지 않는다. 김무성 의원이 “나도 봤다”며 ‘천기누설’하지 않았다면 그저 내수 국면전환용으로 끝났을까. 불과 2년 전 북한이 남북 비밀접촉 내용을 공개해 전세계가 아연실색한 일까지 떠올릴 필요도 없겠다. 망신살이 뻗쳐도 유분수다. 이렇게 국익과 국격을 침해한 이가 ‘일인지하’ 조직의 수장이라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무단 공개를 혼자 했어도 문제이고 ‘윗분’의 재가를 받았어도 문제이다.
국정원 문을 닫든지, 남 원장을 사퇴시켜 급한 불부터 끄든지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 국가의 이익과 명예 이전에 대통령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