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디포럼영화제에 출품된 독립영화는 800여편. 역대 가장 많은 작품 수다. 다큐멘터리를 제외한다면 극영화가 700여편이다. 일단 상업영화를 셈에서 빼면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한해 동안 700편 안팎의 극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시대상을 기민하게 반영하는 독립영화답게 요즘의 화두는 단연 탈북, 조선족, 왕따, 편의점이다. 어떤 이는 왕따문제를 다룬 <파수꾼>과 탈북자영화 <무산일기>의 성취에서 비롯된 모방 열풍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그 사안들이 언론의 단골 메뉴가 된 지 꽤 오래됐다.
오히려 공통된 어떤 지반을 찾으라 한다면 바로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다. 뜬금없는가? 아니다, 현재 한국 독립 극영화들이 줄기차게 영향을 받고 모방하는 영화적 아이콘은 다르덴 형제다. 10여년 전 국내에 다르덴 형제의 <아들>이 소개된 이후, 독립-예술영화 연출자들은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다르덴이 로제타의 뒷모습을 원테이크로 쫓아가듯, 현재 독립 극영화들 속에서 주인공 뒷모습을 핸드헬드로 길게 쫓는 장면은 차고 넘친다. 오랫동안 영화제에서 예심위원을 했던 모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카메라 들고 주인공 쫓아다니는 장면이 나오면 이제 그 기시감 때문에 지친다”. 어쩌면 사건, 사고가 많은 다이내믹 코리아의 독립영화가 다큐멘터리 연출에서 영화적 이력을 출발했던 다르덴 형제의 ‘들고 찍기’에서 친화력을 발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현재 한국 다큐멘터리는 오히려 들고 찍기를 지양하고 있는 형국이다. 카메라는 한결 차분해지고 있고, 무작정 대상을 쫓아다니지도 않는다. 거친 비디오 저널리즘을 한국 다큐멘터리 지평으로 요약하는 일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카메라와 대상의 관계를 탐문하는 미학적 시도로 한결 풍성해지고 있다.
참 난감한 풍경이다. 극영화들이 다큐멘터리의 비디오 저널리즘을 모방하는 사이, 대신 다큐멘터리는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차분히 올려놓은 채 흡사 60년대 모더니즘 미학을 꿈꾸듯 다양한 시도로 웅성거리고 있다. 진화 속도가 완연히 달라졌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 미학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의 영화적 성취를 존경한다. 오히려 질문을 생략한 모방이 문제지 않을까? 카메라와 대상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생략한 채, 주인공 뒷모습을 무작정 길게 쫓아다니는 것으로 사건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고, 대상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과시욕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그 이유없이 길고 지루한 핸드헬드에서 영화제 레드카펫에 대한 욕망을 읽어내는 건 그저 단순한 기우일까?
사실 이 질문은 들고 찍기를 좋아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의문도 포함되어 있다. 잠시라도 카메라를 내려놓을 시간이 필요하다. 무작정 누군가의 뒷모습을 쫓다가 놓쳐버린, 사람과 사건과 카메라의 관계를 차분히 되짚는 그 영화적 시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