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나와 딸이 한 남자를 두고 다투게 될 줄이야.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상대의 눈을 보면 생각을 읽는 능력자로 나오는 수하(이종석)를 본 뒤로 내 딸은 “몇살쯤 그 오빠와 사귈 수 있을까” 헤아리고, 나는 “내가 딱 열(댓)살만 젊었다면 쩜쩜쩜” 한다. ‘15살 시청가’를 엄격히 적용해 종석군과 딸의 만남을 방해할 작정이다.
드라마가 주는 재미의 으뜸은 인물이나 사연에 감정이입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초능력’이 등장해도 억지스럽지 않은 것은 이 드라마의 장점이지만, 문득 우리 사회가 초능력이 아니고는 더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선의나 집념만으로는 부당한 권력이나 고착된 체제에 저항할 방법이 없으니 범상한 능력만으로는 ‘이야기’ 만들어내기 참으로 어려울 것 같다. 초능력이라도 등장해야 방어도 되고 응징도 되고 정화도 되는, 그야말로 ‘퐝톼쥐스런’ 지경.
국정원 댓글공작으로 ‘국기문란’이 무슨 저렴한 계란 이름 같아진 가운데 또 하나의 국기문란이 드러났다. 신뢰가 생명인 국가통계를 입맛대로 주무른 것이다. 양파값 파동 뒤 생산량이 급감하자 이의 공표를 막고, 물가지수를 낮추려고 생명보험료를 품목에서 제외하고 금반지도 조사 대상에서 뺐다. 주요 산업/고용 동향 발표를 앞두고는 수시로 통계청장을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표본 수를 늘리고 고소득을 반영한 지니계수 공표는 예고까지 무시하고 대선 뒤로 미뤘다. 새 지니계수를 적용하면 우리나라 소득분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 중 18위에서 29위로 순위가 뚝 떨어진다. 양극화 심화의 방증으로 대선에 영향을 끼쳤을 사안이다. 올 초 아르헨티나는 물가상승률 등의 통계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국제통화기금의 첫 불신임 조치를 받기도 했다. 국민의 마음을 읽을 능력이 없으면 (조사된) 결과라도 제대로 들어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