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서자마자 이사한 집 특유의 어수선함이 흠씬 묻어났다. 복도 좌우로 이어 붙은 방들은 아직도 뭔가 정리의 손길이 필요한 모양새다.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가 홍대 인근으로 옮겨 새 출발을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취재진이 찾은 날은 11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있던 날. 미디어센터 그거 뭔가요, 하던 시절에 선구적 모델을 제시하고 8년간 광화문에 터를 잡아 시민과 함께해온 미디액트다. 2010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빚어낸 비상식적인 공모 과정으로 인해 광화문에서 쫓겨났지만 그 뒤에도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자력으로 상암동 시대를 열었고 새로운 모색을 하며 3년을 보냈다. 그 3년 동안 생존이야 꾸준히 위협받아왔지만 공동체 미디어 교육, 창작 활동 지원, 미디어 정책 연구 등 제 할 일을 게을리한 적이 없다. 보금자리도 옮기고, 11번째 생일도 맞고. 미디액트의 김명준(사진 왼쪽) 소장과 이주훈 부소장을 만나고 싶어졌다.
-행사가 있는 날이라 바쁘겠다. =이주훈_개관식은 물론이고 오랜만에 경과 보고하는 자리도 좀 가져보려 한다. 저녁에는 후원 파티 겸 사교의 장을 열어야지. 김명준_나야 뭐 오늘 같은 날 하는 일이 별거 있나. 열심히 하는 다른 스탭들이 고생하지. (웃음)
-짐 정리는 좀 되어가는 중인가. =이주훈_공사 마치고 실제로 들어온 지는 두달 좀 넘은 것 같다. 상암동과 비교하자면 그쪽 공간의 70~80% 정도 크기다. 그래서 상암동 때보다 짐을 많이 줄였다. 이제 정리가 거의 되어가는 것 같다.
-아무래도 미디어센터라는 특성상 장소가 바뀌면 그 내부 공간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하는 것도 큰 문제겠다. =이주훈_실은 설렁설렁하게 느껴지는 공간이기를 바랐다. 카페처럼 만들자는 얘기도 있었으니까. 예전보다 좁다보니 공간을 좀 가변적으로 쓰고 있다. 고정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이 조금 줄어든 거다. 마음으로는 1층은 카페, 2층은 센터, 그렇게 하고 싶지만.(웃음) 김명준_설계도만 14개였던 걸로 안다. 상암동하고 비교하면, 내 생각에는, 로비가 가장 축소된 것 같고 나머지 공간은 사실 거의 살리려고 노력했다. 물론 광화문에 비교하면 절반 정도지만. (웃음) 더이상은 공간을 축소할 수 없다. 왜냐하면 더 줄이면 사업의 방향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홍대로 옮기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게 있다면. =이주훈_무엇보다 유지비가 훨씬 저렴해졌다. 임대료가 싸니까. 더 중요한 건 시민의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김명준_심지어 술 취해서 들른 분도 계신다더라. 스탭들이야 깜짝 놀랐지만 그래도 편안한 공간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니 좋은 거다. 묘하게도 상암동이라는 지역은 전문 제작자들이 일상을 등지고 들어와 일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좀 다르지 않나. 전문성도 요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성격을 축소하지 않기 위해서는 옮기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지금은 확실히 접근성이 좋다. 상암동이었으면 못 왔을 것 같아요,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로 봐서도 그렇다.
-이사도 했지만 한편으론 개관 11주년이기도 하다. 소회를 말해달라. =이주훈_지역 미디어센터들이 활성화되고 있는 걸 보면서 우리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지역공동체 구성을 두고 정책적 사례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야 할 그 시기에 투쟁으로 얼룩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공백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어쨌거나 홍대로 넘어오면서 심기일전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성장하고 있다는 건 매우 의미있는 일 아닐까. 김명준_네트워크가 확장되는 걸 보면서 우리가 해온 일이 가치있는 것으로 입증된 거구나 싶었다. 물적 자원이 더 많이 있었다면 새로운 실험도 더 많이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아쉬운 거지. 하지만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상암동에 갈 때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은 쉽게 말하지만 그 당시는 상황이 절박했다. 정말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하고 내부에서조차 고민의 목소리가 나오던 때였으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이야 쉽게 나아지진 않을 거다. 그래도 지속 가능한 모델을 계속 고민 중이다.
-그렇다면 최근에 미디액트가 가장 주력하는 사업은 어떤 것인가. =이주훈_서울시와 함께하고 있는 마을 미디어 지원 사업이 가장 큰 축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 진행 중이다. 소단위 마을별로 누구나 미디어를 제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계층공동체 운동에 주력해왔다면 이제는 지역공동체 운동에도 주력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미디어 운동이 슬로건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정책화되어야 할 시점이며 보다 많은 시민의 일상 속에서 일상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전에는 우리가 유형별 교재를 만들고 직접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라면 지금은 시민이 생활 속에서 직접 활동할 수 있도록 더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거다.
-그 밖에 또 무엇이 있나. =이주훈_DCP(Digital Cinema Package, 극장에서의 디지털 상영을 위해 디지털 마스터링한 상영용 영화 파일) 프로그램 개발 사업도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외국 업체들만 이에 관련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왔다. 독립영화의 경우는 돈이 없다보니 DCP를 아예 못 만들거나 다른 상업영화에 끼어서 하거나 몇 백만원씩 돈을 들여 무리하면서 해왔다. 독립영화의 디지털 배급에 용이하도록 우리가 그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개발 중인 거다. 거의 완성되었고 조만간 공개적으로 그 프로그램을 알리고 배포할 생각이다. 물론 극장별로 개별 상영 조건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옵션들까지 고려 중이다. 이건 대중적으로 공개할 뿐 아니라 일종의 수익사업모델로도 일부 감안하고 있다. 또 하나가 있다면 역시 우리가 꾸준하게 해오고 있는 강좌 프로그램이다. 다른 지역은 사실 강좌 프로그램이 잘 안되는 것 같다. 개발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럼에도 지난 몇년간 우리는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 중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강좌를 기획하고 변형하는 능력을 축적해왔다. 강좌를 운영하는 방법이나 관리체계에서라면 일정한 수준에 오르지 않았나 싶다.
-어쨌거나 이상의 공공서비스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공적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자력으로 운영하는 게 참 힘든 일이겠다. =이주훈_사실 규모만 본다면 예전과 거의 비슷한 규모의 사업을 하고 있다. 돈이 턱없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 간극을 인건비로 보전하다보니 스탭들의 출혈이 심한 거다. 그러고도 나머지는 다 빚이다. 상암동 개관보다 현재 빚이 2배 정도 늘었다. 재정적으로는 압박이 심하다. 하지만 물론 헤쳐나가야겠지. 김명준_독지가들이 주목해주면 좋겠다. 해외에는 그런 사례들이 많다. 소수의 큰 독 지가와 다수의 일반 후원자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서 센터를 재정적으로 지지해주는 것 말이다.
-미디어 환경이 급격하게 변한 이 시점에 미디액트가 갖는 밑그림이란 어떤 것인지도 묻고 싶다. =김명준_우리가 생각한 퍼블릭 엑세스의 큰 그림이 일단 적중했다고 생각한다. SNS의 등장 자체가 퍼블릭 엑세스의 확장이지 않은가. 그런 점들을 염두에 두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이다. 가령 마을 미디어 사업은 미디어 공동체의 새로운 확장이고, DCP 프로그램 개발은 공공적 테크놀로지의 개발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한국사회에는 이상한 모순이 있다. 독립영화 콘텐츠의 제작 주체들이 급격하게 확장되고 양질화된 것에 비해 그에 필요한 정책은 여전히 후진적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주목하고 질문해야 한다. 콘텐츠를 담을 플랫폼의 다양성에 관한 문제 말이다. 제작 주체들은 늘어나는데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나 조건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좋은 콘텐츠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의 부족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런 부분을 미디어센터들이 어떻게 맞물려 해낼지가 고민이다. 가능하면 공공적 지원과 민간 차원의 지원이 결합되면 좋을 것이다. 해외 미디어센터는 그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멀티미디어를 고민하는 센터도 있고, 지역 방송사와 센터가 결합하기도 하고. 그런 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도 활동을 해나가야 할 것 같다. 총체적이고 지속적인 가능성의 모델로서.
-문제의 진원지였던 당시 영진위 위원장(조희문)은 2010년에 일찌감치 바뀌었고, 지난 3년간 서울시장도, 대통령도 바뀌었다. 이런 변화에 따른 기대 또는 우려가 있나. =김명준_지금까지 정부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활동에 우호적일 때도 있었고 무지하게 적대적일 때도 있었다. 앞으로 관계가 어떻게 풀려갈지는 모르겠다. 다만 선입견을 좀 걷어내고 우리의 이러저러한 공공적 성격에 주목해주기를 기대한다. 정부영역에서 생각해보면 우린 그 정책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경험을 해온 사람들이 아닌가. 새롭고 다양한 제작 주체들의 발굴자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환경에 대한 정책 제시자로서 인정해주기를 기대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영진위든 영상 관련 부처든 생산적인 차원에서 같이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가벼운 질문으로 마무리해보자. 11년간 미디액트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사람이 있나. =이주훈_미디액트 개관식 커팅식을 찍은 사진이 한장 있다. 당시 장관과 영진위 위원장, 김동원 감독 등이 죽 서 있고 거기에 미디액트 1호 회원이 함께 서 있다. 누군가 하면, 나중에 다큐멘터리 <진실의 문>을 연출한 김희철 감독이다. 1호 회원에서 유능한 감독이 된 그가 생각난다. 김명준_나는 오히려 누구라고 딱 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내가 미디액트로 만나 알게 된 그들이 여전히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말하자면 어떤 한 사람이 생각난다기보다는 내가 만난 사람들이 이제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해갈지가 무척 궁금하다. 그래서 그들이 변하고 성장해간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남는다고 할까.
-이미 지적/사회적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미디액트를 찾아온 사람들보다는 이곳을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이 확연히 달라진 사람들이 더 기억에 많이 남겠다. =김명준_정말 그런 것 같다. 광화문에서 쫓겨나올 때도 우리가 이대로 그냥 없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한 큰 계기가 있었다. 광화문에서 마지막 고별 행사를 하는데 어르신들이 나를 따로 불러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이 센터를 위해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해야 합니까?”라고.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말이다. 그들의 그 변화에 있어 우리가 키워드가 되었다는 점이 뭉클한 거다. 그래서 진이 다 빠지다가도 그런 점들을 생각하면 생기가 또 도는 거다. (웃음)
김명준 소장과 이주훈 부소장은 농담하며 웃었다. 미디어센터를 운영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곧잘 이렇게 반응한다고. “아, 정말 좋은 일을 하시네요라고 말한다. 그다음에는 다른 말을 한다”라고. 언뜻 들으면 자학하는 유머로 들리지만 그들의 말 속에는 이상하게도 은근한 긍정적 긴장감이 서려 있다. 미디어 운동이 좋은 일이라는 건 알지만 아직은 실천적으로 관심이 없는 ‘누군가’를 일깨워서 교육하고 지원하여 그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미디액트의 평생 몫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 농담 속에는 단숨에 챙길 수 없는 것과 장기적으로 긴장하며 살겠다는 긍정적인 각오가 엿보이는 것이다. 인터뷰가 다 끝난 다음에도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궁리했다. “그런데 우리 <씨네21>하고 같이 해볼 만한 정책 캠페인 같은 건 없나?” 하면서. 미디액트는 놀랍게 살아남았고 여전히 재정적으로 어렵지만 쉽게 물러서진 않을 기세다. 다만 이런 경우에는 친구들이 있는 게 큰 힘이 된다. 두 사람은 취재진에게 말했다. 오가다 시간나면 놀러오라고. 그건 사실 여러분을 초대하는 말인 것 같다. 미디액트에 가면 이 두 사람이 웃으며 친구로 반길 거다(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301-656973 예금주 미디액트, 후원문의 www.mediac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