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세 아버지를 꼽는다면 에디슨, 베토벤 그리고 플로베르일 겁니다! 에디슨은 초기 영화의 모든 기술적 천재성을 대표합니다. 영화의 물질적/기계적/화학적 성질을 발명한 사람들 말이죠. 하지만 그보다 약 50년 앞서 플로베르 같은 작가들은 사실주의라는 개념을 발명했죠. 한편 플로베르보다 30년 전에 베토벤 같은 작곡가들은 강약법을 개발했습니다. 관현악의 구조를 과격하게 확장/압축/변형함으로써 커다란 감정적 힘과 울림을 뽑아낸 거죠.”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이 남자는 <대부> 3부작, <지옥의 묵시록> <잉글리쉬 페이션트> 등에서 필름과 사운드의 편집을 맡아 아카데미상을 세번이나 받은 월터 머치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편집하는 과정을 보게 된 원작 소설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작가 마이클 온다치는 영화제작의 실제 과정에 흥미를 느끼고 월터 머치와 긴 인터뷰를 나누어 책을 펴냈다. <월터 머치와의 대화>(부제는 ‘영화 편집의 예술과 기술’)는 그렇게 태어났다.
이 책은 예술가와 예술가의 대화이기도 하고, 영화 밖의 인물이 영화인에게 던지는 질문의 합이기도 하다. <지옥의 묵시록>이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가 되는 과정에서 프랑스인들의 집이 두번 촬영되고 그중 한 버전을 고르게 된 뒷이야기라든가, <컨버세이션>에서 테이프 재생기의 다이얼을 딸깍거리고 돌려 끄는 순간에 명징하게 정신을 깨우는 피아노 음악에 대한 해설 같은 것들을 읽다 보면 영화를 다시 보며 관객의 무의식을 조종했던 음악과 화면의 호흡을 더듬고 싶게 만든다. 오슨 웰스의 <악의 손길>과 존 포드의 <역마차>에 대한 흥미진진한 회고, 스파게티나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방법에서 따온 영화적 방법론 같은 것들도 있다. 마이클 온다치가 이국(스리랑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야기, 소설이 태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도 좋다. “모든 영화에는 배울 점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배우기만 한다면 말이죠. 그게 어려운 점입니다. 완전히 떠받들거나 완전히 무시하거나, 무명이거나 엄청난 명성을 얻거나 둘 중 하나뿐인 이 세상에선 더더욱 어려운 일이고요.” 월터 머치는 성공과 실패, 꿈에 대한 마지막 몇 페이지까지 살뜰하게 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