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오랜 난제가 풀렸다. CJ CGV가 6월20일 CGV 100호점인 신촌 아트레온 개관식에서 부율 조정안을 발표했다. 한국영화 부율을 기존의 50:50(배급사:극장)에서 55:45로 조정하기로 했다. 단, 서울 소재의 CJ CGV 직영 극장에 한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외국영화는 기존대로 60:40이며, CJ CGV는 “아직까지는 조정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CJ CGV 서정 대표는 “한국영화산업의 발전과 영화계 구성원의 동반 성장을 위해 부율을 조정하기로 했다”며 이번 조정안을 내놓은 이유를 설명했다.
부율은 극장의 흥행 수익을 극장과 배급사가 나눠 갖는 비율을 뜻한다. 한국의 경우, 한국영화는 ‘극장 50, 배급사 50’이며 외국영화는 ‘극장 40, 배급사 60’이다. 한국영화와 외화의 극장 수익 배분이 다른 이유가 있다. 지난 박정희 정권의 심각한 영화 검열과 지나친 시장 개입 정책으로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약화되자 “중간배급업자였던 지방흥행사(서울, 경기, 강원, 호남(제주 포함), 충청남북, 대구/경북, 부산/경남의 7개 권역으로 구분된 각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가 외화에 비해 낮은 부율을 감수하고서라도 (‘와이루’라는 뒷돈을 찔러넣어서라도) 한국영화를 극장에 걸려고 했고, 극장은 ‘시장원리’대로 한국영화의 수익을 더 많이 챙겨가게 됐다”는 게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전 사무국장이자 부천문화재단 김혜준 대표이사의 설명이다. 스크린쿼터를 채우기 위해 관객이 들지 않는 한국영화를 틀어주는 극장에 보상을 해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정해진 한국영화 50:50의 부율은 1980년대부터 이번 조정안이 발표되기 전까지 무려 30여년 동안 관행처럼 굳어져왔다.
영화계가 오랜 논의 끝에 내놓은 성과
부율 개선의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건 한국영화가 급성장한 1990년대 후반부터다. 극장이 의무상영일수 이상으로 한국영화를 틀어도 장사가 잘되기 시작했다. 한국영화 제작사와 배급사쪽이 외화와 동등한 부율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2001년에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와 영화인회의가 함께 구성된 부율 개선추진위원회가 외화와 동등한 60:40 부율 조정을 극장에 요구했다. 2005년에는 감독, 배우까지 가세한 ‘한국영화산업 구조 합리화 추진위원회’가 부율 조정을 포함해 예고편 상영 때 추가비용 지불을 요구하거나 개봉일로부터 3개월이 지나서야 수익을 정산해주는 멀티플렉스의 횡포에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극장은 ‘스크린쿼터부터 폐지해야 한다’거나 ‘영화 관람료를 먼저 인상해야 하는 게 순서가 맞다’거나 ‘외화의 부율을 50:50으로 조정하겠다’ 같은 여러 이유를 대며 부율 조정을 회피해왔다. 특히 영화산업이 불황이었던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부율 조정이 한국영화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끝내 양보하지 않았다.
극장과 배급사 양쪽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던 중에 영진위는 2011년 표준상영계약서를 내놓았다. 한국영화와 외화 모두 배급사 대 극장이 55:45의 수익 분배, 상영계약 영화에 대해 최소 1주의 상영기간 보장, 교차상영을 할 경우에 부율을 배급자에 상향조정하거나 상영기간을 연장해주는 인센티브 부여, 1개월 이상 상영시 월별 정산, 무료 입장 허용 및 무료 입장권 발매시 배급자와 사전 서면 동의 등이 담긴 표준상영계약서다. 하지만 그것은 강제성이 없는, 말 그대로 권고안이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2012년 4월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협약식(제1차 동반성장협의회)에 참석한 CJ CGV는 “영화계 상생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고, 약 2년 동안의 준비 끝에 영화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부율 조정을 받아들였다.
CGV의 이번 부율 조정안을 두고 영화계는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일단 환영할 만한 결정”이라는 반응이다. 제협 이은 회장은 “진작 조정이 됐어야 했다. 영화계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부율 조정이 받아들여지게 된 건 반가운 일”이라고 제협의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감독조합) 이준익 조합장 역시 “일차적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사실 50:50 부율은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약 5천만원 시절에 생긴 거다. 지난해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약 50억원이었는데, 왜 지금까지 과거 부율이 계속 적용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많은 영화인들이 십년 넘게 부율을 조정하라고 요구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감독조합의 공식 입장을 정리했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관망
반면 이번 부율 조정안이 여전히 외화와 동등하지 않은 점이 다소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는 “극장이 기존의 50:50에서 5를 양보했다는 말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배급과 상영이 묶여 있다보니 배급(CJ엔터테인먼트)쪽이 상영(CGV)에 제대로 요구하지 않은 것”이라며 “CGV가 양보한 만큼 CJ엔터테인먼트는 이익을 볼 것이기 때문에 CJ가 이번 조정안을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 조정안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또, 그는 “CJ가 정말 상생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슬라이딩 배급 시스템을 통한 다양성 영화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슬라이딩 시스템은 개봉 첫주 80:20(배급사:극장), 둘쨋주 70:30, 셋쨋주 60:40, 넷쨋주 50:50, 다섯쨋주 40:60 식으로 영화를 오래 걸수록 극장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배급 시스템으로, 다양성 영화에 최소한의 상영일수를 보장해줄 수 있다.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그룹 안팎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조정안이 아니냐는 영화계의 의견도 있다. 하지만 CJ의 한 관계자는 “이번 부율 조정안은 제1차 동반성장협의회 이후 오랫동안 논의하고 결정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CGV가 꺼낸 이번 부율 조정안을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같은 다른 멀티플렉스가 따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차원천 대표가 선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롯데시네마나 극장만 운영하는 메가박스는 부율 조정안에 적극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황. 롯데시네마 홍보팀 임성규 팀장은 “CGV의 부율 조정안을 따를지 아니면 현행인 50:50의 부율을 유지할지에 대해 논의된 바가 전혀 없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메가박스 브랜드팀 이용복씨 역시 “메가박스는 CGV의 부율 조정안을 지켜본 뒤 이 문제를 두고 논의할 계획이다. 아직까지는 부율 조정안과 관련한 어떠한 얘기도 나온 바가 없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김혜준 대표이사는 “시장의 지배자인 CJ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향방이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이번 CGV의 부율 조정안은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고 예상했다.
30여년 만에 단행된 CGV의 부율 조정안은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영화계가 오랜 논의 끝에 내놓은 성과라는 점에서 향후 영화산업에 적지 않은 파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제협 최현용 전 사무국장은 “사실 5를 양보한 게 금액으로는 얼마 되지 않겠지만 영화산업을 주도했던 극장이 영화계의 상생을 위해 양보했다는 건 박수를 보낼만한 일”이라고 CGV의 부율 조정안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영진위 김보연 정책센터장 역시 “유통 중심이었던 영화산업에서 수익 배분이 조금이라도 콘텐츠를 창작하는 쪽으로 이동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혜준 대표이사 역시 “사기업으로서 대가를 바란 선택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번 부율 조정안은 굉장히 큰 의미일 수 있다”며 “현재 산적해 있는 영화산업의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는 첫 단추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장을 주도하는 리더 기업으로서 CJ가 부율 개선뿐만 아니라 스탭 처우 개선, 스크린 독과점 같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달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