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당국회담 무산에 대해, 북은 남북관계를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보는데 남은 김정은 체제 길들이기 차원에서 회담에 임했다는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의 분석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별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체제부터가 상식 밖인 북은 그렇다치더라도 상대 대표가 마음에 안 든다고 굳이 차관을 고집해 판을 깨버린 우리 정부는 뭘까. 누가 봐도 얼씨구나 덥석 받아놓고는(대통령이 나서서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할 때 살짝 흥분하신 거 같았어) 기싸움 끝에 돌아서버리는 거, 참으로 준비 안된 행동이다. 보통 이런 애들이 소개팅만 천번 하고는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한다.
애초 회담 제의는 북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 공식 발표로 이뤄졌고, 이를 장관급 회담으로 받은 건 우리쪽이었다. 그 조평통 위원장은 공석이고 부위원장은 명예직으로 할배들이 이름을 얹고 있는데 우리로 치면 조직의 사무총장쯤에 해당하는 그곳의 서기국장이 그렇게 ‘격’ 낮은 사람이라는 증거는 그럼 있는지 모르겠다(어우어. 나도 모르게 말글 생활에 스며든 종편의 그림자…).
내가 이해하는 한 ‘신뢰 프로세스’의 첫발은 진짜 신뢰하거나 신뢰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회담이 무산되자마자 “(북이) 과거처럼 굴종이나 굴욕을 강요하는 행태”를 보였다는 비난이 청와대 고위 인사 입에서 나온 것은 참으로 ‘지난한 프로세스’를 예고하는 것 같다.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폄훼하는 발언이다. 이번 일에 관여한 이들이 ‘한반도의 미래’가 아니라 ‘한분의 심기’만을 바라본 결과가 아닐까 싶다.
어쩌겠나. ‘격’을 높여 총리급회담으로 하든지, 번잡스럽더라도 사안별로 실무회담을 하든지, ‘그분’ 마음 풀리시면 화끈하게 정상회담을 하든지. 이 대목에서 윗동네 ‘그분(들)’ 심기도 만만치 않겠구나.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