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가장 비싼 좀비영화 <월드워Z>

“대자연(mother nature)은 연쇄살인마다.” 젊은 바이러스 학자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내뱉는 말은, 때늦은 폭로에 불과하다. <월드워Z>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가 맹렬한 속도로 5대양 6대주를 집어삼키고 있는 시점의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출발한다. 전직 유엔 요원인 제리(브래드 피트)는 자의 반 타의 반 떠돌이 생활을 접고 가족과의 평온한 일상에 적응해가던 중, 필라델피아 광장 한복판에서 좀비 떼의 습격을 받고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이후 그는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가로 유엔 복귀 명령을 받아들이는데, ‘페이션트 제로’(첫 번째 환자)를 색출하는 일은 요원하다 못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발병지로 추정됐던 한국 평택 미군기지에서, 죽음의 순례는 이스라엘, 영국 등지로 하릴없이 이어진다.

전반부는 좀비영화보다 현실적인 전 지구적 재난영화를 지향한다.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을 경험한 인류에게는 이런 좀비영화야말로 지금 이 시대의 가장 설득력있는 재난영화의 모델이 아닌가, 잠시 착각을 유발할 정도다. 버려진 마트에서 벌어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도, 한줄짜리 뉴스처럼 처리되는 미 대통령의 죽음도, 그저 물질만능주의 혹은 속도만능주의로 병든 인간세계의 한 단면처럼 건조하게 묘사된다. 그렇게 B급 장르물의 단골손님이었던 ‘좀비’는 ‘바이러스’, ‘전쟁’ 같은 용어와의 합성을 통해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 의미 번식을 꾀한다. 물론, 북한의 살벌한 좀비 예방책에 실소가 터져나오는 장면까지도 포함해, 이 영화 나름의 관찰력과 지적인 전술은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쓰인 원작,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 Z>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도 하다.

반면 중/후반부는 장르적 쾌락을 블록버스터급으로 증폭시키는 데 공력을 다한다. 명실상부, 가장 비싼 좀비영화답다. 제작진이 가장 야심차게 준비한 예루살렘의 좀비 ‘쓰나미’ 신들이나 좀비영화 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기내 액션은 특히 규모를 앞세운 장면들이다. 그 사이사이에 좀비들의 기습 작전을 돕는 장치를 매설해 친절한 할리우드영화에 대한 학습효과도 유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후반부에 제리가 WTO 재난대책센터 연구원들과 함께 좀비들을 상대로 벌이는 숨바꼭질 게임은, 좀비영화만의 유서 깊은 유머와 트릭에 대한 되새김질이기도 하다. 여기에, 만신창이가 된 ‘슈퍼 대드’ 제리가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결말부는 ‘가족영화’의 감동까지 더하려 한다. 이 풍성한 상차림이 조화로움까지 갖췄는지는 모르겠으나, 거기서 자본의 무게를 견뎌내기 위한 블록버스터급 확장판 좀비영화의 몸부림이 느껴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