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본 어떤 분이 “오, 제목 죽이는데. 정곡을 찌르는군”이라고 감탄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정대세를 보고도 공작원이라고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니. 물론 필립 로스가 한국을 배경으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지만(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는 한다. “트루만이… 한국에 쳐들어가 이승만이라는 파시스트를 지원하겠다고…”), 매카시즘이 휩쓸던 1950년대의 미국사회는 현시점의 대한민국을 생각나게 한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지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주인공 아이라 린골드는 노동자로 일하면서 공산당에 가입한다. 큰 키와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그는 우연히 연극에서 링컨 역을 맡게 되는데 연설문을 암송하는 그의 대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결국 그는 ‘강철의 린골드’라는 뜻의 ‘아이언 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라디오 스타가 되고 당대의 스타인 여배우와 결혼하게 된다.
한동안 평온한 생활을 누리던 그는, 그러나 아내와 갈등을 벌이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복수심에 불타는 아내는 정치권 주변의 작가와 합심해서 남편을 비난하는 책을 출간한다. 그 책의 제목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이다. 물론 책이 나온 이후 아이언 린은 비참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물론 소설이 이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작가는 독자들이 인간적인 매력을 갖추고도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파멸하는 주인공에게 쉽게 공감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화자(話者)인 네이선이라는 소년을 이끌어주고 롤모델 역할을 했던 아이언 린은 사실은 젊은 시절 사소한 시비 끝에 사람을 죽인 살인자였다. 폭력 성향은 평생 그를 떠나지 않았고, 아내와의 관계도 거짓말과 배신으로 점철된다. 그의 몰락이 꼭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독자들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일베충이나 ‘애국세력’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을 치는 것은, 아이언 린이 살아가면서 평생 동안 대답을 강요받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언 린이 일주일 동안 네이선을 오두막에 초청하자 네이선의 아버지는 아이언 린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선생, 난 정치논쟁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저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고, 우리 아들과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게 대답해주었으면 하는 겁니다. 당신은 공산당원입니까?” 아이언 린이, “아니요, 선생님,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다시 묻는다. “이제 제 아들이 물어볼 차례입니다. 네이선, 너도 린골드씨에게 지금 공산당원인지 물어보거라.”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에 대해 질문과 대답을 강요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제목은 흠칫 놀라게 하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