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 첫장의 주인공은 시력 검사판 맨 아래줄의 깨알 같은 글자 하나하나까지 알아보는 데도 악보를 읽을 수 없게 되어버린 피아니스트 릴리언이다. 시각실인증이다. 컬럼비아대 신경정신과 임상교수로 재직 중인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는 일은 종종 편견을 깨는 과정이다. 그의 환자들은 가끔은 ‘꾀병’이라고 불리는 상태다. 색스의 유명한 저서 중 하나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P선생은 릴리언보다 증세가 더 심하다. 처음 증상이 나타난 뒤 3년도 되지 않아 시각장애뿐 아니라 촉각인지장애까지 나타났고, 급기야 모자인 줄 알고 아내의 머리를 잡는 일까지 생겼다. 색스는 이런 특이병으로 고생한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수집하고 나아가 그들의 삶의 스토리를 완성해주는 의사이자 작가다. 그가 전에 쓴 책을 읽고 그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이 그의 새로운 환자가 되어 다음 책의 주인공이 되는 식이다. 소식을 하면 몇년을 더 살 수 있다거나, 긍정적 사고방식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거나 하는 식의 치유와 힐링은 올리버 색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의 책에는 완치된 사연이 아니라 병을 끌어안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새로 터득해가는 인간적 안간힘이 주를 이룬다. 병에 차도가 없어도, 혹은 더 악화되기만 해도, 삶에 적응해 살아가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때로는 사회적 재활 과정을 통해 ‘부활’하는 듯한 희열을 경험하기도 한다. 장애가 있는 삶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 상태가 완전체인 것처럼. 색스의 책 속 장애나 질병은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 경험할 일이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의 책은 소화불량, 어깨결림에 대한 책보다 더 마음을 울린다. 사팔뜨기로 자라서 두눈이 함께 움직이지 않아 세상을 입체적으로 본 적이 없는 여자가 40대 후반에 시각 훈련을 받아 둥근 것과 튀어나온 것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든지, 읽을 수는 없지만 쓸 수는 있는 병에 걸린 소설가가 신작 소설을 쓰는 방법을 터득했다든지 하는 사례는 색스 특유의 따뜻한 시선 덕분에 흡입력이 강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색스 자신이 안구 흑색종 환자임을 알게 된 시간의 일지가 나온다. 이 글까지 읽고 나면, 누구라도 인지능력장애로 고통받을 때 올리버 색스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