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공덕동에는 유명한 먹자골목이 있다. 위치는 공덕시장 근처로, 전을 파는 가게와 족발 파는 가게가 특히 이름이 높다. 사시사철 장사진이고, 초저녁에도 바글바글이다. 사무실이 공덕동에 있던 시절, <씨네21>도 공덕동 먹자골목에서 빈번히 회식을 했다. 한번은 취재원과 그곳에 다녀온 남동철 선배가 “공덕시장 족발집에서 남기남 감독의 조감독을 만났다”고 했다. 남기남 감독의 조감독은 옆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이 아니라 음식을 내오는 식당 종업원이었다.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음을 알아채고, “왕년에 나도∼” 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던 모양이다. 우리 주변에 혹시 왕년에 한가락 했던 영화인들이 많지 않을까. 스스로는 영화인이라고 자부하지만 누구도 영화인이라고 알아주지 않는, ‘충무로 넘버3’들을 지면에 모셔보자고 한참을 떠들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류승완 감독은 이런 궁금증을 끝내 참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에겐 궁금증이 아니라 사명감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고 싶었던, 그러나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예전의 액션 스타들을 모시고 싶었다. 완전히 사라져버린 그들을 찾아내 그들의 건재한 모습을 나 스스로가 확인하고 싶었다.”(<씨네21> 342호, “B급 영화팬 류승완이 ‘옛날’ 액션배우에게 바치는 헌사”) <피도 눈물도 없이>(2002)에서 그는 김영인, 백찬기 등 왕년에 한가락 했던 액션배우들을 등장시켰는데,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그 배우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관객 입장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다. 특히 어린 시절 봤던 TV드라마 <수사반장>에서 몸서리치게 하는 악역을 단골로 맡았던 백찬기가 <피도 눈물도 없이>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누구더라, 그 배우?” 하며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름을 몰랐던 배우가 또 있다. 박동룡. 1969년 <팔도 사나이> 시리즈를 시작으로 2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건달 아니면 배신자를 주로 연기했는데, 그의 콧수염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2000년대 초반, 정부의 영화정책에 반대하는 원로 영화인들의 기습시위가 있을 때마다 그는 깔맞춤한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소란이 벌어지면 뒷짐지고 구경하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명함 한장 건넬 틈이 좀처럼 없었다. 그렇게 잊었다가 변장호, 최인현,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옴니버스 액션물 <명동잔혹사>(1972)를 비디오로 다시 챙겨보면서야 그의 이름 석자를 알게 됐다. 다시 본 그의 콧수염은 기어코 호기심을 간지럽혔고, 잘려나간 배우 크레딧을 일일이 손으로 적어 검색했다. 그 뒤로 ‘배우 박동룡’의 연락처를 구해 잠깐 전화 통화한 적 있다. 간곡한 인터뷰 요청에 배우 박동룡은 딱 잘라 말했다. “먹고살기 바빠요∼.”
☞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20명의 외국 배우를 특집기사로 소개한다. 반응 좋으면 추석 때쯤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한국 배우들도 소개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