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출을 전공했던 대학 시절, ‘액션 키드’는 꿈도 못 꿨다. 액션영화를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액션 합을 설계하는 작업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고, 설계를 하더라도 그걸 수고해줄 액션 배우가 주변에는 없었다. 다른 장르에 비해 컷의 호흡이 짧다보니 찍어야 할 컷은 또 어찌나 많은지. 편집장으로부터 ‘한국영화아카데미 정두홍 액션 연출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앞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에 앞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에서 기자를 포함한 참가자 10명 앞에 선택지 4개가 주어졌을 때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1번. 경찰서로 이송된 살인사건 용의자가 형사가 방심한 틈을 타 옥상으로 도망치면서 벌어지는 액션이다. 2번. 유도 선수 출신인 사장이 자신을 쫓아온 사채업자 5명을 상대하는 상황이다. 3번. 국정원 요원과 북한 특수요원간의 싸움이다. 4번. 라이벌 관계의 이종격투기 선수 두명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서는 시합이다. 참가자들간의 눈치 작전이 시작됐다. 누군가는 일대 다수의 액션을 찍어보고 싶다는 이유로 2번을, 누군가는 실전 무술을 사용하는 고수의 대결을 그리고 싶다는 이유로 3번을 골랐다. 내 차례가 왔다. 1번부터 3번까지는 이미 여러 한국영화에서 본 듯한 상황이었다. 반면 4번의 이종격투기 액션은 최근 한국영화 <오직 그대만>과 <전설의 주먹> 그리고 할리우드영화 <워리어>를 손에 꼽을 정도로 신선한 소재였다. 두 선수의 캐릭터를 설정하면서 서사도 함께 구축할 수 있어 도전하는 데 여러모로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았다. 임영수, 임성운 감독과 한조가 되어 4번의 액션 연출에 도전하게 되었다. 민폐만 끼치지 말자, 고 수업의 목표를 스스로 정했는데 집에 돌아와서야 이종격투기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를 다시 바꿔야 하나? 가위바위보에서 져 시나리오까지 떠맡게 된 마당에 선택을 되돌리는 것만큼 민폐는 또 없을 것 같아 맨땅에 헤딩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