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이 원만하지 못해 가급적 헤벌쭉 웃으며 나다니는 편인데, 어쩔 수 없이 얼굴을 굳혀야 하는 순간이 있다. 배달 계란, 배달 우유 등 판촉장 앞에서다. 저만치서부터 “고객님~” 부르는데 가능한 한 냉정한 자세로 최대한 그들을 ‘유령 취급’하며 쓱 지나가야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하지 않는다(거절이 유독 힘든 나 같은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판촉‘이세요’). 문제는 내 옆의 먹순이. “맛만 보고 가라잖아”며 입맛을 다시는 것도 모자라 뚫어져라 쳐다보니 도리가 없다. 애가 맛있게 먹기라도 하면(얜 돌멩이도 맛있게 먹을 애예요. 으흐흑) 숨돌릴 틈도 없이 홍보•설득 멘트를 날리시는데, 다 듣고 있자니 마음은 점점 돌덩이다.
일수 수완 좋은 판촉자는 다른 품목으로 같은 구역에서 만나게 되기도 한다. 종일 서 있어야 하고 쉴 새 없이 말해야 하며 무엇보다 실적 압박을 받는 그 노동의 총량을 어떻게 따질 수 있을까. 조금 벌더라도 다치면 보호받고 아플 때 병원갈 수 있으며 잘리더라도 새 일 구할 때까지 ‘풀칠할 돈’이라도 나온다면 우리 사회 노동의 풍경은 사뭇 다를 것이다.
사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거나 근로계약조차 못하는 ‘비공식노동’ 인구는 전체 노동인구 1700만여명의 40%를 웃도는 700만명이 넘는다. 정규직 노동자보다 많은 수치다. 식당에 편의점에 모텔에 주유소에 공사장에…. 이들은 도처에 있다. 상당수는 ‘반듯한 일자리’는커녕 적은 액수라도 통장에 돈이 찍혀 들어오기를 소망한다. 이른바 ‘근로사실’이 기록된 바 없으면 급할 때 대출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 말 떨어지기 무섭게 뚝딱 나오는 시간제 공무원 확대 시늉 말고, 비공식노동을 ‘공식화’하는 것부터 차근차근했으면 좋겠다. 사회보험료를 면제해주는 등 최소한의 안전(과 생존)을 지켜주는 것이 그 ‘반듯한 첫발’이라 생각한다. 아, 지하경제 ‘양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