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이후 도덕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잿더미 위에 앉을 수밖에 없었던 독일이 고작 70년 만에 반성해야 할 학생에서 유럽을 이끄는 스승으로 발돋움했다. 유로화 위기가 경제 강국 독일을 유럽의 운명을 결정하는 초강대국가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유럽연합이 붕괴될 것인가를 두고 연합 내 채권국과 채무국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고, 나아가 정치와 경제의 엘리트가 관리하는 ‘위로부터의’ 유럽 프로젝트와 ‘아래로부터의’ 저항 사이에 빚어지는 구조적인 긴장 역시 마찬가지다. 부자와 은행을 위한 국가사회주의를, 중산층과 빈민에게는 신자유주의를! 이러니 여기저기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계층간의 격돌, 세대간의 격돌, 빈부격차가 나는 정부간의 격돌. <위험사회>를 쓴 울리히 벡의 <경제 위기의 정치학>은 단호하게 말한다. “경제학은 사회와 정치 분야에서만큼은 문맹과 다름없다. 다시 말해서 경제학의 안목은 사회와 정치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니 모두가 경제를 이야기할 때 경제의 문제처럼 보이는 정치문제를 주시하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결론으로 보인다. 유로화의 붕괴를 막는 것만이 문제로 보이지만, 훨씬 더 중요한 일은 유럽이 지금껏 표방해온 가치, 곧 개방성, 자유, 관용이라는 가치가 무너지지 않게 다잡는 것이다. 울리히 벡은 유럽사회가 ‘민족사회들이 민족이라는 성격을 탈피해 이룬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현재 유럽의 젊은 세대에게 민족으로 분리된 국가의 개념은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이들이 경험하는 유럽은 개인들로 이뤄진 역동적인 사회다. 전 독일 총리 헬무트 슈미트,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소설가 헤르타 뮐러와 임레 케르테스 등을 비롯한 이들은 ‘유럽 하라!’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모였다. 민족들의 유럽이 아니라 개인들의 유럽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이다.
유럽이 위기다. 하지만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유럽만 위기인가. 유럽의 문제에 대한 이 책은 한국사회가 경제를 위해 희생시키는 자유, 민주, 평화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의 고민과도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