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출신의 테러리스트들이 백악관을 점령한다. 한달여 뒤 개봉할 롤랜드 에머리히의 <화이트 하우스 다운>과는 전혀 다른 영화다. 테러리스트들이 빌딩이나 여객기를 점거하고, 통신시설을 마비시킨 적은 있어도 이처럼 대놓고 백악관을 뒤흔든 적은 없었다. 이제 이라크 전이나 아랍계 테러리스트는 식상했던지 <백악관 최후의 날>은 ‘토르’ 크리스 헴스워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지난해 개봉한(국내 미개봉) 댄 브래들리 감독의 <레드 던>(2012)처럼 북한을 소재로 삼았다. <레드 던>에서는 북한군이 직접 미국을 침략했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영화 속의 어색한 한국말처럼 황당하고 억지스럽기 그지없다. 크리스 헴스워스만큼이나 <300>(2007)의 제라드 버틀러 역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거기에 아론 에크하트와 모건 프리먼까지 나름 호화 캐스팅이다.
국제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의 고위급회담이 열리고, 한국쪽 경호요원으로 위장해 미국에 들어온 북한 출신의 강(릭 윤)은 테러리스트들을 이끌고 백악관을 점령한다. 미국 대통령 벤자민(아론 에크하트)과 각료들을 인질로 잡은 그들은 DMZ에 주둔한 미군의 철수, 미국 내 핵미사일을 통제할 수 있는 암호를 요구하는데,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적화통일은 물론 미국을 가난과 기아의 나라로 만들고자 한다. 이에 전직 경호원 마이크(제라드 버틀러)가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홀로 백악관으로 진입한다.
카리스마라면 결코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에게도 뒤지지 않을 제라드 버틀러가 그처럼 테러리스트들과 악전고투를 벌인다. 마크 포스터의 <머신건 프리처>(2011)에서도 마약 등으로 엉망인 삶을 살았다가 죽어가는 수단의 아이들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것처럼, <백악관 최후의 날>에서는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홀로 적진으로 뛰어든다. <다이하드> 시리즈의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처럼 그 역시 버디무비가 어울리지 않는 고독한 카우보이다. 테러리스트들이 무려 10여분 만에 백악관을 접수한 뒤 안톤 후쿠아라는 이름에 걸맞은 초고속 액션이 펼쳐진다. 제라드 버틀러는 마치 ‘악(惡)은 악으로 제압하겠다’는 듯 종종 하드코어 수준의 강도 높은 ‘원맨쇼’ 액션을 선보인다. 하지만 ‘조요해(조용해)’, ‘시크러(시끄러)’ 같은 한국말이 난무하는 영화를 감당하기란 다소 벅차다. 이병헌이 <지.아이.조2> 촬영차 미국에 머물던 중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출연을 거절했다”고 말했던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