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은… 아름다웠다. 의도치 않았던 접촉의 불쾌함은 스크린이 영롱한 빛을 내뿜는 순간 사르륵 녹아버렸고, 어깨를 대리석화했던 피로는 칸의 따가운 햇살을 받아 자글자글 타버렸다. 이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훌륭한 영화는 훌륭해서 좋았으며, 후진 영화는 농담거리를 제공해줘서 좋았다. 딱딱한 바게트는 오래 씹을 수 있어서 좋았고, 캔 하나에 3200원짜리 콜라는 아껴 먹으니 좋았다. 천근만근 데일리는 줄 섰을 때 읽을 거리 되니 좋았고, 변덕스런 날씨는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내 생애 최초의 칸은 내 생애 최대의 낙천주의라는 기이한 증상을 안겨준 것이다.” 지금은 퇴사한 동료가 칸영화제를 다녀온 직후 오픈칼럼이라는 꼭지에 털어놓은 심경이다. 평소에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던 친구였는데,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이같은 예찬론을 펼친 걸 보면, 첫 경험의 쇼크가 엄청났던 모양이다.
칸에 가본 적은 없지만 베니스엔 딱 한번 가본 적이 있다. 두 영화제의 분위기가 천양지차는 아닐 것이다. 해외영화제 첫 출장 소감을 나라면 이렇게 썼을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것이 짜증났었다”고. 소규모 실내체육관 전광판보다 후진 자막 영사는 그렇다치고, 변사처럼 한 사람의 성우가 대사를 줄줄이 읽어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형편없는 내 영어 실력에 분통을 터트리는 것이 더 마땅하고 적절하겠지만. 어쨌거나 한 차례 마감을 끝낸 뒤 만사가 귀찮아진 어느 날 오후에는 가방을 둘러멘 채로 주상영관 계단에서 잠에 곯아떨어진 적도 있다. 마침 극장 근처에선 신자유주의 반대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었는데, 상영관을 바삐 옮겨다니던 기자들과 영화제 관계자들은 꾀죄죄한 행색을 하고 널브러진 나를 불청객 시위대의 일원이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올해 처음 칸에 간 장영엽 기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년에도 또 가고 싶다고 할까, 죽어도 다신 안 간다고 할까. 지난해에 이어 다시 칸영화제에 간 정한석 기자는 어떨까.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두 기자는 무려 25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보내왔다. 여독을 풀지도 못한 채 지난 2주 동안 스크린과 모니터를 번갈아 붙잡고, 매 순간 사력을 다해 영화를 보고, 읽고, 쓴 그들의 얼굴이 저절로 떠오른다. 여유있게 영화를 음미하거나, 한가로이 인터뷰를 나눌 여건이 안됐을 텐데도, 두 기자는 이를 변명의 방패로 삼지 않고 세심한 에세이와 성실한 인터뷰 글을 늦지 않게 보내왔다. 두 기자의 감상이 절대적인 품평은 아니겠으나, 올해 칸영화제 상영작들에 대한 흥미롭고 충실한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독자들도 충분히 그렇게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