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화두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5.18민주화운동을 “북한 소행”으로 몰고, 희생자들을 “홍어”, 시신이 담긴 관을 “택배”라 조롱하는 일베 회원들의 패륜적 발언들은 5월18일 아침을 달궜다. “민주화” 발언을 했던 한 아이돌은 본심이야 어쨌든 일베의 아이콘이 되었다. 심지어 조갑제씨마저 광주 북한군 침투설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종북’으로 낙인찍는 걸 보면 일베의 폭주는 불신지옥 집단과 닮아가고 있다.
일베는 지역혐오, 여성혐오, 인종혐오 등 약자들에 대한 온갖 혐오들이 들끓는 용광로처럼 보인다. 극우적 선동이 밤낮으로 괴이하게 과열되는 곳, 누가 더 근사한 혐오 발언을 하고 인증숏을 날리는지 앞다투어 경쟁하는 인터넷 ‘패션극우’들의 왕국.
혹자는 아직 일베가 인터넷 커뮤니티 차원에 머물러 있지만 유럽처럼 인기있는 극우 정치인과 만난다면 길거리를 함께 활보하고 국회 명함을 파는 정당정치 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리있다. 이들이 길거리에 쏟아져나온다면, 가스통과 성조기 휘날리던 늙은 우익들과 달리 파시즘의 붉은 행진을 이룰 가능성이 농후하겠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떤 논객은 일베 회원들에게 애국 표창장을 주고 안보행사에 초청한 국정원이 배후세력이라고 말한다. 민주당 당원들은 새누리당이 그들의 숙주라고 한다. 정말 특정의 배후세력이 존재할까? 미안하지만 난 이들에게 학교에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10대 청소년들, 20대 청년들과 이야기해보라고 하고 싶다.
이미 그곳이 일베다. 한국사회 도처가 일베다. 학벌과 스펙 외에 다른 가치를 모조리 휴거시켜버린 이 아찔한 격투장은 이미 충분히 약자들의 지옥이자 극우 언어들의 온상지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 하지 않았던가. 여성혐오와 인종혐오가 만연한 지 꽤 오래되지 않았던가. 돈을 위해 역사적 가치는 무시해도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지 않았던가. 새삼 왜 일베가 문제인가?
고루하지만, 다시 한번 그람시의 그 유명한 경구를 빌려와야겠다. “위기는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한 시기이다. 이러한 공백기에 대단히 다양한 병적 증세들이 나타난다.” 10년 민주정부의 실패 이후, 제대로 된 보수적 가치조차 뿌리내리지 못한 이 위기의 시대, 살벌한 경쟁 시스템에서 낙오된 청년들에겐 자신의 무기력한 자아실현과 삶을 설명할 상상의 적대가 필요하고, 잉여력을 과시할 약자와 ‘정치적 올바름’ 따위의 놀잇감들이 필요하다. 일베는 그저 “대단히 다양한 병적 증세”의 하나다. 일베가 없어져도 다른 대체물이 등장할 것이다. 자명하게도, 사회민주주의가 실패하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유럽에서 극우가 종양처럼 번성했던 것과 비슷한 궤적이다.
예컨대 일베는 병적 증세에 시달리는 한국적 ‘증상’이자, 서글픈 초상이다. 한국사회 자체가 일베의 숙주였던 셈이다. 실패한 민주정부가 조롱받는 것에 발끈한, 자칭 깨어 있는 시민들에겐 미안하지만 이 위기는 단순히 일베를 악마화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공백기에 과잉되는 ‘적과 나’의 적대는 오히려 위기를 더욱 가속시킬 뿐이다. 위기란 새로운 가치의 도래를 통해 해결될 문제. 그것이 진정 이기는 길이다. 이 미련하고 어린 패션극우들을 일깨울 수 있는 방법은 삶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매혹적 그림을 제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