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폰다는 자기 세대의 대변인이다. 그는 1970년대에 배우로서 절정을 보냈다. 1970년대는 이른바 ‘정치영화의 시대’인데, 폰다는 ‘68세대’ 이후에 등장한 진보세력의 맨 앞줄에 서 있었다. 대중의 지지로 먹고사는 스타가 혁신의 대변인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스스로 존재의 토대를 허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마르쿠제의 말을 빌리면 대중은 혁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전통을 긍정하는 순응자에게 더 호감을 갖는다(<일차원적 인간>). 폰다는 스타의 위치에서 전통과 한판 승부를 벌인, 혹은 그런 대결에의 초대를 마다하지 않은 드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시작은 섹스 심벌

제인 폰다(1937~)의 데뷔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가능했다. 알다시피 그의 부친은 전설인 헨리 폰다다. 데뷔작은 앤서니 퍼킨스와 공연한 <키 큰 이야기>(Tall Story, 1960)이다. 농구 선수와의 로맨스를 그린 청춘물로, 감독은 <피크닉>(1955)으로 유명한 조수아 로건이고, 폰다는 치어리더로 나온다. 70년대의 정치영화 때문에 폰다의 초기 경력은 거의 잊혀져 있는데, 사실 그녀도 처음에는 일반적인 여배우들처럼 외모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어릴 때부터 무용으로 단련된 쭉 뻗은 다리는 뮤지컬 배우 시드 채리스가 기억날 정도로 예뻤다. 영화도 하체를 드러낸 폰다의 모습을 반복해서 우려먹는다.

폰다의 몸매는 단번에 관객의 주목을 받았고, 이런 특징은 그녀가 1965년 프랑스 감독 로제 바댕과 결혼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바댕은 감독이기보다는 카트린 드뇌브 같은 여성 스타 수집가로 더 유명했다. 당시의 폰다는 바댕의 전처인 브리지트 바르도와 비교되는 섹스 심벌로 알려졌다. 게다가 성적 관계를 리드하는 폰다의 적극적인 태도는 남성 판타지의 은밀한 대상이었다. 이때의 작품들은 대부분 폰다의 몸매를 전시하는 것들인데, 특히 <캣 벌루>(1965)는 폰다의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웨스턴으로까지 끌어온 것으로, 이 작품의 흥행성공 덕분에 폰다는 본격적으로 스타덤의 중심에 오른다.

그런데 사실 이때부터 폰다의 반항적인 기질은 조금씩 드러났다. 어찌 보면 몸매 때문에, 혹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진정성이 가려져 있었다. 평생 민주당 지지자인 부친의 영향으로, 제인 폰다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치적 조건에서 성장했다. 데뷔하기 전인 20대 초반에는 파리에서 미술사 등을 공부하기 위해 2년간 머물렀는데, 이때 유럽의 진보세력과 친교를 맺었다. 폰다는 당시의 자신을 ‘소문자 c의 공산주의자’(Small-c Communist)로 소개했다. 본격적인 공산주의자는 아니고, 맛을 본 것 정도라는 의미였다. 한창 섹스 심벌로 이름을 알릴 때인 1964년, 폰다는 옛 소련을 방문하여, 냉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도도 보였다.

제인 폰다가 정치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기 시작한 것은 역시 1968년 이후다. 인디언의 인권 옹호, 흑인차별 금지, 베트남 전쟁 반대, 그리고 페미니즘과 관련된 행사에서 그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반전시위였다. 현재 미국의 국무장관인 존 케리와 함께 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참전용사 출신인 존 케리가 2004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에게 패배한 이유 중에는 당시의 반전시위 주도가 여전히 중요하게 꼽힌다. 많은 미국인들이 북베트남을 적으로 간주하고, 참전을 애국심으로 해석할 때, 폰다는 반대로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을 ‘전범자’로 부르며 공격했다. 그러면서 그의 영화도 점점 정치화됐다. 이런 계열의 영화의 시작은 시드니 폴락 감독의 <그들은 말을 쏘았다>(1969)이다. 1930년대 공황시대를 배경으로 돈의 노예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폰다는 더 내려갈 데가 없는 주변인 여성으로 나온다. 제목은 심하게 다친 말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차라리 쏘지 않느냐는 뜻에서 나왔다. 말하자면 폰다는 그런 말과 같은 여성을 연기한다.

정치 스타로 치른 고난

폰다는 1972년 당시 북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를 전격 방문했다. 물론 전쟁종식을 촉구하는 일종의 시위였다. 용기있는 행동이었지만, 그 대가도 컸다. 1년 전 폰다는 아카데미에서 <클루트>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미국의 스타’가 됐다. 그런데 폰다는 괘씸하게도 적국의 수도에서, 적국 시민들에게 환영을 받으며, 특히 미국의 전투기를 공격하는 대공기관총 아래 앉아 있었다. 한번 상상해보라. 미국의 보통 사람들은 폰다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한마디로 폰다는 배신자가 됐다. 온갖 욕설과 모욕이 폰다에게 쏟아졌다.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는 남자들이 나타났고, 폰다의 얼굴이 그려진 소변기도 출시됐다. 더 모욕적인 것은 폰다의 모든 정치적 행위를 철없는 ‘여성 딴따라’의 순간적인 충동으로 폄하하는 것이었다. 학벌을 중시하는 미국사회가 이때는 폰다가 명문 바사 칼리지(Vassar College) 동문이라는 사실을 무시했다.

그런데 쇠는 맞으면서 더 단련되는 것처럼, 폰다의 배우로서의 입지는 이때 더욱 굳어졌다. <클루트>와 더불어 폰다의 ‘3대 정치영화’로 평가되는 <줄리아>(1977)와 <귀향>(1978)이 발표되는 70년대 말은 그의 연기 경력의 정점이었다. 폰다처럼 정치적 활동이 활발했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공연한 <줄리아>(프레드 진네만 감독)는 여성 사이의 우정에 관한 고전으로 평가된다.

폰다의 대표작 하나를 꼽는다면 그것은 <귀향>(할 애시비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한 평범한 여성이 베트남전 참전 해병장교와 결혼한 뒤, 처음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남녀의 상하관계에 의문을 품고, 남편이 아닌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고, 죄의식 속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성장과정이 당시의 시대상황을 압축하고 있어서다. 뭐랄까? 변해가는 세상에 내몰린 채, 운명을 받아들이는 폰다의 연기는 정치적 투사이기보다는 당대 여성의 불안한 정체성을 그대로 투사하고 있다. 70년대 폰다의 영화는 이런 식이었다. 곧 그녀는 주연이 아니라 주연을 비추는 빛 같은 인물을 연기했다. 폰다는 다시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다.

마르쿠제의 주장에 따르면 문화가 소비의 대상이 되면서 스타는 긍정의 아이콘이 됐다. 그래야 대중의 호감을 얻는다. 대중의 지지가 없는 스타는 공허한 수사이기 쉽고, 그래서 스타와 정치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의 내용이 혁신이라면 스타와 양립하기 어렵다. 혁신은 대중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스타 되기를 의식하는 배우는 모난 모서리를 둥글게 깎는다. 폰다는 대중의 인기로 살아가는 스타로서는 드물게도 당대의 통념과 물러서지 않는 한판 싸움을 벌였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용광로와 같은 한국정치 속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상상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