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에세이가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읽지 않아도 되겠지 생각해놓고는 맥주 마시며 땅콩 안주 먹듯 홀짝홀짝 우드득우드득 어느새 한권을 다 끝내버리곤 한다. 뭘 읽었지 생각해보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나중에 “아! 이런 얘기가 있었지” 하고 책을 찾아보면 그 책이 아니라 다른 책에 실린 에피소드다. 이봐요 하루키 선생, 혹시 집에서 에피소드 재활용기계 같은 걸 쓰고 계십니까? 약간 과장하면 그의 에세이집에서 F. 스콧 피츠제럴드가 한번이라도 언급되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이렇게까지 투덜대놓고 어느새 다 읽어버린 책이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다. 일본에서 예약판매만으로 50만부가 나갔다는 그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를 기다리는 독자라면 놓치기 아까울 책이다. 일본의 여성지 <앙앙>에 연재한 글을 묶은 이 책(‘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는 이전에 한국에 선보인 적이 있지만 빠진 글이 많았다. 이번에는 3권 모두 전체 번역, 출간되었다)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로, ‘무라카미 하루키 변주곡’이라 명명할 수 있을 듯하다. 뭘 읽어도 어디선가 하루키의 이런 글을 읽은 적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미없거나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게 하루키 수필의 힘 아닐까. 마치 단편소설의 도입부 같은 글도 있다. <리스토란테의 밤>은 그중 압권이다. 아내와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러 간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옆 테이블의 상황을 엿들은 해프닝을 담았다. 남자는 ‘슬슬 꾜여볼까’ 생각하고 있고 여자도 ‘그냥 넘어가줄까’ 궁리 중인 게 역력한 옆 테이블의 분위기는 남자가 파스타를 “츠르릅 츠르릅!” 하고 엄청난 소리를 내며 먹기 시작하자 얼어버린다. 하루키와 그의 아내와 웨이터와 옆 테이블의 여자 모두 “계절이 바뀔 때 지옥의 문이 한번 열렸다 닫히면서 나는 것 같은 소리”에 말을 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그저 행복하게, “츠르릅 츠르릅!” 이런 식으로 언제나의 하루키처럼 맥주와 재즈, 책읽기와 야구, 기담과 김밥, 달리기와 강아지 같은 화제를 조근조근 늘어놓는다. 그야말로 하루키다운 글의 향연.
[도서] 언제나의 하루키처럼
글
이다혜
2013-05-30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비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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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언제나의 하루키처럼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