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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베이더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다
이화정 2013-05-28

랠프 매쿼리 Ralph McQuarrie, 1929~-2012 <스타워즈> <코쿤> 컨셉 아티스트

<스타워즈>

<스타워즈>

<스타워즈>(1977)에서 오비완 캐노비를 찾아 황량한 모래행성에 떨어진 로봇 C-3PO와 R2-D2를 기억하는가. 영화 속 C-3PO는 “우릴 공장에 보내 고철로 만들 거야”라며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지만,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에 나온 마리아의 형태를 기반으로 한 황금색 로봇 C-3PO와 동그란 깡통로봇 R2-D2는 SF영화사의 기록을 새로 쓰던 기념비적인 비주얼의 탄생을 뜻하는 사건이었다. 모래행성에 앞선 우주선 장면에서 위용을 드러낸 다스베이더와 함께, 이들은 이후 <스타워즈> 시리즈를 대표하는 마스코트가 된다. 그리고 그 돌풍의 핵에 컨셉 아티스트 랠프 매쿼리가 있었다.

캐릭터부터 테마파크의 놀이기구 디자인까지

<스타워즈> 시리즈의 아버지는 조지 루카스였지만, 랠프 매쿼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모양새는 지금과 상당히 달라졌을지 모른다. <스타워즈>를 착안할 당시 조지 루카스는 <청춘낙서>(1974)의 흥행부진으로 난항을 겪고 있었고, <스타워즈>의 작품화도 진척이 없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거절을 표했고, 이십세기 폭스사 역시 관심 이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누구도 조지 루카스의 머릿속에 있는 이 거대한 우주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조지 루카스가 친구인 매튜 로빈스(<8번가의 기적> 감독)에게 랠프 매쿼리를 소개받은 건 일종의 구원과도 같았다. 시나리오를 건네주고 “원하는 대로 그려달라”는 조지 루카스의 주문을 받은 랠프 매쿼리가 그린 몇장의 스케치와 다스베이더의 헬멧에 홀딱 반한 이십세기 폭스사는 곧 조지 루카스에게 착수금을 지급하기에 이른다. 3부작을 만드는 8년 동안 컨셉 아티스트들은 많았지만 전 과정을 통틀어 참여한 사람은 랠프 매쿼리가 유일했다. “랠프는 내가 <스타워즈>를 구상하기 위해 고용한 최초의 스탭이었다. 말로서 내 아이디어를 전달하지 못하면 난 항상 스탭들에게 랠프가 그린 멋진 일러스트를 보여주고 ‘이렇게 하라’고 했다.”

그 누구도 <스타워즈>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는데, 작업에 참여한 랠프 매쿼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은 그가 평생을 쭉 해오던 일이었고, <스타워즈>도 그중 한편이었다. 1929년 몬태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 소규모 출판사를 경영했던 할아버지와 화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보잉사에 입사해 항공기와 관련된 테크니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했다. 그러던 중 한국전에 참전했는데, 총알이 머리에 날아오는 상황에서 다행히 방탄모에 맞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치의학 관련 회사에서 치아와 의료장비 스케치를 했으며, <CBS> 뉴스프로그램의 포스터와 애니메이션 작업 등에 참여했다. 특히 나사에서 그린 각종 우주선과 항공기계 장치들은 훗날 <스타워즈> 작업화에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피자에서 우주선을 떠올리다

그림은 전쟁의 상처로 고통을 겪던 그를 몰두하게 해주는 존재였고, <스타워즈>는 본격적으로 영화 작업을 하는 계기가 됐다. <스타워즈>에서 그는 C-3PO, R2-D2, 츄바카 같은 <스타워즈>의 주요 캐릭터 디자인뿐만 아니라 팔콘, X윙 등 우주비행선의 디자인, 영화 속 건축물 내부디자인에 관여했다. 이후엔 영화 <미지와의 조우>(1977), <E.T.>(1982), <레이더스>(1981), <쥬라기 공원>,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은 <코쿤>(1985), <스타트렉4: 귀환의 항로>(1986), TV시리즈 <배틀스타 갤럭티카>(1978) 등에서 컨셉 아티스트로 활약한다. 이 밖에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컬렉션의 커버 디자인을 비롯해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테마파크에 있는 ‘백 투 더 퓨처 라이드’ 디자인 작업에도 참여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지만 랠프 매쿼리의 디자인 철학은 단순하다. “억지로 짜내려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치약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그런 순간이 있다.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생각들이 하나로 모아진다.” 대표적인 예가 다스베이더의 헬멧이다. 애초 조지 루카스가 머릿속에 그린 다스베이더는 서아시아의 유목민 같은 좀더 거창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랠프 매쿼리가 “다스베이더가 우주공간에서 등장하니 산소마스크를 씌우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냈고, 조지 루카스가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고 한다. 한 솔로가 타고 다니는 우주선 밀레니엄 팔콘의 탄생은 더 재밌다. 비대칭에다 조종석도 한가운데 있지 않은 납작한 우주선의 모양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배고파 먹던 피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미지와의 조우>의 우주선 디자인으로 애를 태우던 스필버그에게 해법을 제시해준 것도 랠프 매쿼리였다. 랠프 매쿼리는 파킨슨병으로 2012년 82살로 생을 마감했다. 추모사에서 한 조지 루카스의 말이 인상적이다. “랠프는 컨셉 아트 혁명의 아버지였고, 그의 수많은 상상력이 영화산업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었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는 그의 예술작품의 혜택을 받을 것이다.”

<미지와의 조우>

들리는가, 광선검 소리가

그의 동료 벤 버트(1948~), 사운드 디자이너

<스타워즈> 시리즈의 ‘독창성’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랠프 매쿼리라면, 라이트세이버(광선검)의 ‘웅~’ 소리를 만들어낸 사운드 디자이너 벤 버트도 그 독창성에 관해서라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정작 현장에서 연기하는 제다이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겠지만, <스타워즈>의 열혈 팬들의 귀에는 내내 그 소리가 떠나지 않았을 터. 어려서 녹음기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믿었고, 나이가 들면서는 과학선생을 꿈꿨던 그였지만 결국 <스타워즈>로 인해 운명이 바뀌게 된다. 오스카상을 안겨준 <E.T.>(1982)의 ‘이티’ 목소리는 동물과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합쳐 만들어냈다. 이후 <하워드 덕>(1986)과 <윌로우>(1988) 등을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사운드 디자이너로 군림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SF영화의 사운드를 디자인하며 다시는 로봇이나 외계인의 사운드를 만들어내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다시 <월•Ⓔ>(2008)의 사운드 디자이너로 돌아와 건재를 알렸다. <슈퍼 에이트>(2011)의 외계인 소리 또한 그의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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