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몸 구석구석이 저려오고 누군가에게 맞은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드센 선생님과 학창 시절을 보낸 독자분들이라면 체벌을 생각하실 수도 있겠으나 저의 경우엔 육체적 고통이 가르침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프로레슬러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엄격한 사제지간의 불문법이 존재하는 곳이지요.
저에게는 여섯명의 스승이 계십니다. 김일, 타이거 도구치, 조지 다카노, 최태산, 이왕표, 역발산. 이분들의 성함을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제 몸이 살짝 떨릴 정도입니다. 어마어마한 포스를 갖춘 분들이죠.
김일 선생님은 자타공인 탈아시아급의 육체와 스트렝스(힘)를 가지고 일세를 풍미했던 분입니다. 저에게는 구름 위의 성층권 너머에 존재하는 분이라서 직접 링에서 지도를 받는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젊은 시절의 혹독한 시합으로 인해 말년에 휠체어를 써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꼭 제자들의 경기를 보러 오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링 가까이에서 관전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를 여쭤보았는데 선수들이 때리고 맞는 걸 보면 하다못해 외국인 악역이 얻어맞는 장면을 봐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 차마 곁에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오른발은 삶을 왼발은 죽음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가며 거한의 레슬러들과 사투를 벌였던 선생님에게는 링 안의 고통이 아이맥스 4D영화만큼이나 너무나 생생했던 것이지요. 제가 어느 날인가 경기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것은 악역 레슬러의 당연한 직무입니다만 괜스레 울적했고 경기가 끝났는데도 평온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휠체어에 앉아 계시던 선생님께서 저를 손짓으로 부르시곤 한마디 하시더군요. “악역은 맞는 게 이기는 거다.” 당시에는 네, 알겠습니다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아까 경기할 때 잘못 떨어진 탓인지 아님 어깨가 살짝 맛이 갔는지 경기복을 못 벗겠는 겁니다. 아마추어 레슬링 경기복 스타일의 상하 일체형 경기복이었죠. 몸은 용광로처럼 뜨겁고 온몸을 휘감는 고통 속에서 찰싹 달라붙은 경기복이 갑갑해서 미칠 것 같은 상황. 그때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과 함께 “그래, 난 맞는 게 이기는 거다”라고 뇌까렸습니다. 그러자 미치도록 뛰고 있었던 심박수가 안정을 되찾았고, 새끼발가락부터 정수리까지 온몸을 분주하게 오가던 고통도 참을 만해졌습니다. 다시 몸을 추스르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선생님은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셨더군요. 그리고 몇해 전 선생님은 세상을 떠나셨지요.
사실 제가 선생님께 받은 가르침은 이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너무나 도움이 되는 말씀이었지요. 한편으론 선생님께서 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해주셨는지 궁금증을 안고 있지만 그걸 풀 방법이 없네요. 과연 왜 그러셨을까요? 그냥 안돼 보여서? 불쌍해 보여서? 또는 한때 악역 레슬러로 일본에서 활동했던 본인의 경험 때문에? 그 궁금증을 안고 이번 5월18일 일산 능곡전통시장 ‘특설링’에서 3년 만의 국내 경기 복귀전을 펼칩니다. 맞는 게 이기는 거다. 그래요. 이번에 한번 제대로 이겨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