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고를 헤아려 돈을 뽑으면서 CF모델의 춤을 멀뚱히 본다. 관공서도 기업도 대학도 심지어 은행 현금인출기까지 창조경제를 부르짖는다. 내용의 모호성을 떠나 이 표현은 굉장히 무성의하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내세웠던 창의경제보다 언어의 조탁 능력이 떨어지는 이가 만든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반복된 강조에 너도나도 아는 척, 하는 척한다.
나도 먼 산을 바라보며 창조경제가 뭘까 생각한 적이 있다. 곳곳에 이쑤시개처럼 꽂힌 송전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저 송전탑만 없으면 경관이 정말 좋을 텐데…’ 싶었다. 유럽의 시골이 그 ‘뷰’만으로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막대하다. 해외여행 자율화 세대는 공감할 것이다. 그 그림 같은 전원풍경의 1등 공신은 전봇대 없는 길이라는 걸. 지금 우리 산야는 송전탑이라는 거대 전봇대가 지배하고 있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기적과 부흥을 좇던 과거에는 주먹구구식으로 에너지 정책을 펴고 전력을 공급했다 하더라도, 원전으로 대표되는 대량공급식 에너지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심지어 대단히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된 2년 전 ‘후쿠시마 쇼크’ 이후에는 적어도 에너지 효율과 수요 중심의 ‘설계’라는 것을 해야 했다. 원전 수출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나 설계하던 이전 정부야 그렇다치더라도 이 정부는 뭘 하고 있는 건가.
한전은 결국 밀양의 노인들을 밀어내고 송전탑 건설을 강행할 태세다. 분신자살까지 초래한 격렬한 반대에 일단 시간만 끌어본 게 아니라면 그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다. 송전선로 지하매설을 포함한 몇몇 대안은 논의조차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 기술적으로도 ‘창조경제적’으로도 충분히 검토할 내용인데 말이다. 유서를 품은 노인들이 잘린 나무둥치를 끌어안고 몸으로 막고 있는데도 보상 타령이나 하는 걸 보니, 뭔가 큰일이 터질까봐 영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