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인>의 최종회가 끝난 직후부터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지인과 카카오톡으로 “이럴 수는 없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하는 요지의 대화를 나누었다. 향을 태우면 30년 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나인>에서 과거에 갇힌 주인공은 살았나 죽었나? 마지막의 선우는 성장한 선우인가, 안 죽은 선우인가, 미래에서 온 선우인가? 설정을 이리저리 맞추다 지친 나머지, 하나를 맞추면 다른 하나가 어그러지는 퍼즐을 퍼즐이라고 불러도 무방한가, 작가를 잡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론은 이랬다. <여름으로 가는 문>처럼 말끔히 정리되는 게 아니면 곤란하다고. 그래서 다시 읽었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여름으로 가는 문>은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와 더불어 ‘끝내주는’ 시간여행물이자 러브 스토리다. 주인공 댄은 천재 엔지니어다. 그는 가사도우미 로봇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지만 자신의 약혼녀 벨과 동업자 마일즈에게 회사를 빼앗기고 만다. 돈도 돈이지만 사랑하던 일까지 빼앗긴 그는 냉동인간이 되어 30년 뒤에 깨어나기로 하는데, 냉동인간이 되기 전날 밤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누구 좋으라고! 결국 그는 마일즈를 찾아가지만, 자신의 등 뒤에서 마일즈와 벨이 결혼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댄은 마일즈와 싸우다 강제로 제압당해 냉동인간이 되어 30년 뒤에 깨어난다. 그새 자신의 생각과 모든 것이 다르게 진행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한 소녀와 고양이를 되찾기 위해 방법을 강구한다.
그런데 이 책을 다시 읽는 묘미는, 과거에 상상한 미래의 풍경에 우리가 이미 살고 있음을 자각하는 데 있었다. <여름으로 가는 문>은 1957년에 쓰였고, 당시로는 미래인 197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댄이 냉동상태에서 깨어나 도착한 해는 2000년이다. 57년의 하인라인이 상상한 미래와 지금을 비교하면 이렇다. 2000년에 깨어난 댄은 미래의 신문을 펼치는 법을 몰라 당황한다. 그러다 드디어 신문 넘기는 법을 알아낸다. “별의별 짓을 다하다가 우연히 신문 1면 오른쪽 하단의 귀퉁이를 건드렸더니 신문 종이가 말려들어가 다음 면으로 넘어갔다. 그 부분을 누르면 표면 전하 현상이 일어나는 듯했다. 같은 부분에 손을 댈 때마다 잇따라 다음 면으로 깔끔하게 넘어갔다.” 아무리 봐도 아이패드다. 그는 이런 상상도 했다. “노인의학과 내분비학의 발전 덕택에 노력을 기울인 여자들은 최소한 30년은 족히 서른살의 얼굴과 피부를 유지할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러했다. 청순한 소녀 역할을 맡으면서도 할머니가 된 것을 자랑하는 인기 스타들도 있었다.” 재밌는 설정 또 하나는, 댄 말고도 과거로 간 또 한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500년 전으로 가고 싶어 했는데, 그의 이름은 레너드 빈센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혹시 미래에서 온 인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에 웃다 보면, 혹시 하인라인이야말로 아이패드, 그리고 시술과 수술의 동안시대를 미리 견학하고 과거로 돌아가 살았던 시간여행자가 아니었을까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