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은퇴한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이 쓴 음악 에세이. 한평생 피아니스트로 살았던 브렌델의 <피아노를 듣는 시간>에서 음악은 관념이나 느낌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에게 음악은 백건과 흑건으로 이루어진 피아노와 악보에 그려진 무수한 음표와 기호들이 상징하는 가능성과 때로는 지금은 많이 연주되지 않는 고음악 악기들이 갖는 여린 선율 속에서 더 잘 숨쉴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은 20세기의 작곡가(라벨, 드뷔시, 메시앙, 리게티 등)들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브렌델 자신이 어디까지나 칸타빌레에 근거한 시대의 곡들을 주요 레퍼토리로 삼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문학을 나의 두 번째 업이라 여기는 까닭에 최대한 간단하게 표현하되, 그렇다고 너무 단순하게는 쓰지 않도록 스스로를 부추겼답니다. 완전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내가 좋아하는 함축, 불완전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했지요.” 브렌델에게는 연주만큼이나 글을 쓴다는 행위가 음악적인 일인 듯 보인다. 피아노치듯 글을 타이핑하며 머릿속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연주 기법에 대해 쓴 대목들은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난해할 수 있다. “가장 흔히 하는 실수는 악보에 대한 맹신입니다. 이는 우리 피아니스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피아니스트만이 페달의 특혜를 누릴 수 있는 탓이죠.”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을 연주할 때 페달을 사용해야 한다거나 모차르트의 경우처럼 기보가 불완전하다면 피아니스트가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작곡가들과 음악 철학도 언급된다. 예컨대 모차르트에 대해서는 선입견을 제하는 일이 필수다. “모차르트는 도자기로 이루어진 음악가도, 대리석이나 설탕으로 이루어진 음악가도 아니다.” 모차르트 음악의 중요한 열쇠를 쥔 것은 바로 오페라라고. 순전히 객석에 앉는 이들을 위한 글도 있다. 언젠가 시카고의 음악회에서 브렌델은 연주를 멈추고 말했다. “나는 여러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여러분은 내 연주를 들을 수가 없겠군요.” 이후로는 아무도 기침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