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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의 번뇌 <길 위에서>

비구니만 거처하는 백흥암은 일년에 두번 문을 연다. 감독이 백흥암을 촬영하고 싶다고 했을 때 스님은 여기서 무얼 보고 싶으냐고 묻는다. 감독은 잘은 모르지만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스님마다 출가의 계기는 다르지만 상욱 스님과 선우 스님은 정반대의 이유로 절에 들어왔다. 상욱 스님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교수임용 면접을 앞둔 시기에 홀연 출가했고, 선우 스님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다른 사람 손에 이끌려 절로 들어왔다. 유학 시절 젠(zen)센터에 가기 전까지 불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상욱 스님은 이 길이 자신의 갈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속세의 모든 인연을 버린 경우다. 이에 비하면 선우 스님은 자신이 왜 절에 살아야 하고 스님이 되어야 하는지 자발적으로 각성할 틈도 없이 운명적으로 스님의 길을 부여받았다. 출생신분, 학력, 성격 등 모두 다르지만 똑같은 승복을 입고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하면서 이들에게 남아 있는 속세의 흔적은 휘발되고 구도자의 본성이 내재된다.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는 도를 깨치기 위해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의 엄격한 생활과 21세기 문물을 수용하여 혁신을 추구하는 사찰의 모습이 고루 담겨 있다. 만행을 떠난 스님이 커피를 대접받고 휴대폰으로 기념촬영을 하면서 “우리도 21세기를 살아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불교가 외딴곳에서 유아독존하는 종교가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세상을 돌아보고 수행을 점검하는 만행이 있다면 독방에 들어가 3년 동안 묵언수행을 하는 과정도 있다. 간혹 생을 마치고 독방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 힘든 과정을 자처해서 되풀이하는 스님도 있다. 꽉 짜인 규율과 반복되는 의식 속에서도 스님들은 틈틈이 농담도 하고 윷놀이 시합도 한다. 이 영화의 균형잡힌 시각은 불제자의 길을 걷는 모든 인물을 선입견없이 진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가능했다. 매일 되풀이되는 수행이지만 화두와 자신이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화두를 단지 붙들고 있는 것과 화두와 내가 한몸이 되는 것의 차이는 천지차이로 수행을 하는 모든 스님은 그 경지를 찾아 계속 반복을 하게 된다. 그럼 이러한 수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큰 스님은 고단한 수행을 하는 이유가 밥값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평생을 해도 진척이 더딘 것이 바로 수행이고 이는 곧 밥값의 어려움이다. 출가를 해서 도를 닦는 사람은 아니지만 성인이라면 누구나 밥값의 무서움을 공감할 것이다. <길 위에서>에 굳이 종교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인간사의 번뇌를 다소 색다른 장소와 인물을 통해 들여다보는 사색적이되 맑고 밝은 다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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