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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오! 마돈나] 외설로 치른 스타의 영광

미아 패로 Mia Farrow

<카이로의 붉은 장미>

미아 패로는 성적 매력이 별로 없는 배우다.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관능과는 거리가 먼 외모를 가졌다. 앙상하게 말랐고, 너무 어려 보였다. 대중을 사로잡을 카리스마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배우를 하기에는 부끄럼도 많고, 노출되는 것도 싫어할 것 같았다. 그런데 패로는 10대 때 배우가 된 뒤, 우디 앨런과의 한판 싸움이 정리된 최근까지 그 어떤 스타 못지않게 팬덤의 중심에 있었다. 종종 세상을 놀라게 하는 스캔들을 일으키며, 패로의 삶은 그 자체가 세상에 전시된 멜로드라마였다. 사적인 부분이 보호되지 않고 전부 공적으로 알려지는 노출된 삶, 이것은 스타와 배우를 가르는 기준점이기도 한데, 패로는 일상의 모든 것이 낱낱이 관음의 대상이 되는 전형적인 스타의 운명을 살았다.

스캔들을 디딤돌로

스캔들은 허구에서 일어나는 외설이 현실에도 침범한 윤리적 위반이다. 허구 속의 외설도 불쾌한데, 그게 현실의 일이라면 역겨움의 대상이 되기 쉽다. 문제는 그 외설이라는 것이 종종 우리 삶의 비밀을 들추는 데 있다. 잉마르 베리만의 아무 영화나 기억하면 될 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설을, 그렇게 악을 쓰며 역겹다고 거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내면이 들켜버린 수치를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스타의 속성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게 외설이다. 허구의 위반이 실제의 삶에 끼어든 경우다. 스타를 통해 외설은 허구와 실제의 경계를 넘나들고, 그래서 판단의 기준을 허문다. 외설, 그게 그렇게 나쁜 것인지 의문까지 들기도 한다.

패로는 베벌리힐스에서 자란 할리우드 집 안의 딸이다. 영화감독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배우를 했다. 어머니는 <타잔> 시리즈의 제인 역으로 유명한 배우다. 7남매 중 네 자매가 전부 배우 경력을 시작했는데, 그 누구도 모친의 경력을 따라갈 조짐을 보이지는 못했다. 맏딸이던 패로가 그나마 TV드라마 <페이튼 플레이스>로 조금 이름을 알렸다. 그런데 그녀가 당돌하게도 사고를 쳤다. 바로 ‘살아 있는 전설’이던 프랭크 시내트라와 전격적으로 결혼을 한 것이다. 그때는 1966년이고, 패로의 나이는 21살, 시내트라는 51살이었다. 이 결혼, 결코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미성년인 딸이 성공한 아버지와 결혼한 것 같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근친적이고, 계산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로도 보였다.

당시는 로만 폴란스키가 영국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의 진출을 모색할 때이기도 하다. 그가 미국에서 만든 첫 작품이 <악마의 씨>(Rosemary’s Baby, 1968)다. 폴란스키에겐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는 여배우가 필요했고, 경제적 여건이 넉넉하지 못한 폴란스키의 눈에 들어온 배우가 패로였다. 고액을 지불하지 않고도, 관객의 주목을 끌 수 있는 배우였다. 곧 시내트라의 어린 아내라는 게 캐스팅의 큰 이유였다. 그런데 이 작품으로 패로는 예상과 달리 보란 듯 배우로서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순진하고, 희생적이고, 청승맞고, 겸손하고, 연약하고, 부드럽고…. 말하자면 남성 판타지를 충족해줄 전통적인 여성 이미지를 종합했다.

패로는 더이상 시내트라의 후광을 업은 배우가 아니라, 진정한 연기자로 평가됐다. 패로는 본격적인 스타의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연기에 전념하기 위해 시내트라와도 이혼했다. 그런데 전성기를 열 것 같던 1970년대에 패로는 별로 발전하지 못했다. 로버트 레드퍼드와 공연한 <위대한 개츠비>(1974) 정도가 겨우 기억날 정도다. 배우보다는 스캔들로 또 유명세를 치렀는데, 이번 대상은 음악계의 거물인 앙드레 프레빈이었다. 역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16살 위)였고, 시내트라와 달리 그는 기혼자였다. 프레빈의 아내도 음악가였는데, 남편을 뺏긴 일이 얼마나 상처가 됐던지, <어린 여성들을 조심하라>(Beware of Young Girls)라는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으로 들어서는 어린 여성들을 조심하라. 스물하고 네살쯤의 그윽한 눈과 창백한 얼굴, 가냘픈 손에는 데이지꽃이 들려 있어….” 누가 봐도 젊은 여성은 패로를 가리키는 노래였다.

우디 앨런과의 화양연화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의 싸움은 너무나 유명하고, 잘 알려진 대로다. 짧게 말해 패로와 프레빈 사이에 입양된 순이와 앨런이 사랑했고, 결혼한 이야기다. 패로 입장에선 기가 막히는 게 그녀는 앨런과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부부관계였는데,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입양한 딸과 앨런이 결혼한다고 하니, 남편과 딸이 결혼하는 것 같은 역겨움이 드는 것이다. 패로는 과거에 자신이 ‘어린 여성’의 장본인이었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또 다른 ‘어린 여성’에게 우디 앨런을 뺏긴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막장 드라마가 됐지만, 영화적 삶은 절정이었다. 패로와 앨런은 1980년에 만나 1992년에 헤어졌는데, 이때 만든 앨런의 영화는 감독의 최고작이자, 패로의 최고작이 됐다. 특히 <브로드웨이의 대니 로즈>(1982)에서의 마피아 두목 애인,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에서의 얼빠진 영화 애호가, <한나와 그 자매들>(1986)에서의 편안한 아내, <또 다른 여인>(1988)에서의 청승맞은 임신부, <우디 앨런의 부부일기>(1992)에서의 걱정 많은 아내 등 이 모든 역할은 패로가 보여준 최고의 연기였고, 영화들은 모두 앨런의 최고작이 됐다. 두 사람이 만든 영화 가운데 가장 못 만든 영화도 아마 <로마 위드 러브>(2012)보다는 나을 것 같다. <로마 위드 러브>가 못 만들었다는 게 아니다. 당시에 앨런이 만든 영화는 범작도 수작이 될 정도로 총기가 번쩍였다. 그 모든 영화에 패로가 등장했다. 이쯤 되면 앨런은 피그말리온이고, 패로는 갈라테이아였던 것이다.

아버지 같은 남자 시내트라와 결혼했고, 역시 아버지나 다름없는 프레빈을 다른 여성으로부터 뺏었지만, 드디어 자신과 어울리는 남자를 만나 배우로서 절정의 삶을 살았는데, 그만 입양한 딸에게 그 행복을 뺏기고 말았다. 그 과정이 전부 외설이나 다름없었고, 또 잔인할 정도로 대중에게 노출됐다. 그런데 그런 게 스타의 운명이기도 하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외설의 경계를 위반하는 것 말이다. 리처드 다이어(<스타, 이미지와 기호>) 같은 이론가에 따르면 그럴 때 스타는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통념의 권위에 균열을 내는 이유에서다. 스타이기에 그런 권한을 위임받는 것이고, 그래서 스타는 외설이라는 죄악의 공포와 공존할 운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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