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해낸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죽이는 것은 너무 가벼운 벌일 것이다.” 앞부분에 인용된, 누구나 들으면 가볍게 웃고 넘어갈 마크 트웨인의 저 말처럼,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의 시작은 잔잔하다.
주인공 부부는 로맨스 소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쿨한 뉴욕 커플이다. 남편 닉은 1990년대 말 잡지계가 영광의 순간을 보낼 때 기자가 된다. 아내 에이미의 인생은 좀더 소설적이다. 그녀의 부모는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청소년용 시리즈물을 쓰는 작가 부부다. 누구나 어린 시절 이 시리즈를 읽으며 자라고, 에이미는 그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산다. 자신감 넘치는 남자와 부유한 부모를 둔 아름다운 여자의 만남. 두 사람은 <어메이징 에이미의 결혼식 날>이 출간된 직후 결혼한다.
물론 그들의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뜻하지 않은 인터넷의 발흥으로 닉은 직장생활 11년 만에 실직한다. 에이미의 처지도 나을 게 없다. 책 주문량이 줄어드는데도 화려한 생활을 계속해온 부모들은 결국 몇 차례의 어리석은 투자 끝에 딸에게 맡겨두었던 신탁 기금을 되찾아간다. 두 사람은 닉의 고향인 미주리의 시골에서 에이미의 마지막 남은 저금으로 술집을 연다.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닉은 결혼기념일이면 아직도 ‘보물찾기’를 하려고 드는 에이미 때문에 머리가 돌 지경이다. ‘보물찾기’란 쪽지에 적어놓은 단서를 따라 선물을 발견(해야!)하는 연례행사다. “사랑하는 우리 남편은 감기에 걸릴 때마다 이 요리를 먹으면 금방 나아요”라는 쪽지를 보고 예전에 함께 갔던 레스토랑에 가서 다음 쪽지를 찾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짜증이 나는 일인지는, 남성 동지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당연히 닉에게는 어리고 생기 넘치는 애인이 생긴다. 그리고 결혼 5주년이 되던 날, 에이미가 실종된다.
소설이 활기를 띠는 것은 여기서부터다. 닉의 독백과 에이미의 일기가 번갈아 나오며 진행되어온 그때까지의 줄거리는 모두 거짓말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속여가며 얘기를 주고받은 것이며 독자도 마찬가지로 속은 것이다. “나는 죽었다. 그래서 행복하다”라는 에이미의 말로 시작되는 2부에서 우리는 그동안 ‘보물찾기’에나 집착하던 그녀의 행동이 완전히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부부는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지만,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소설의 말미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다. “맙소사, 닉, 당신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당신이 불쌍해서.” “왜?” “왜냐하면 당신은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당신이 되어야 하니까.”
두말할 나위 없는 올해 최고의 반전. 밤을 새우면서 읽을 재미있는 책을 찾는다면 반드시 권해주고 싶다. 더불어 남녀 사이의 미묘하고도 때로는 극단적인 심리 상태에 대한 통찰도 얻을 수 있다. 뭐 기념일 행사를 두고 갈등을 벌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미 아는 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