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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이웃을 사랑하라
이영진 2013-05-13

눈뜨자마자 욕부터 튀어나왔다. 꼭두새벽부터 뭔 짓인가. 삽으로 맨바닥을 벅벅 긁어대는 소리가 거슬려 선잠에서 깼다.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젖히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주정뱅이 그 아저씨다. 내가 아는 한, 그 아저씨는 일용직 노동자다. 하루 벌어 하루 풀칠해야 할 터인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아저씨는 일감을 구하려고 조금도 애쓰지 않는다. 대신 종일 집에 머물면서 아침나절엔 시멘트를 개고, 저녁나절엔 대문을 망치로 쳐댄다. 하릴없고, 공연하다. 대체 그 아저씨는 매일 마셔대는 소주와 매일 시켜대는 짬뽕 값을 어떻게 구하는 걸까.

다세대 주택에 산다. 채광이 좋고 집주인 인상이 좋아 무턱대고 입주했다. 막상 살고보니 성가신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웃들이 뭣보다 성가시다. 3층에 살지만, 언덕에 세워진 집이라 창문을 열면 눈높이에 골목이 있다. 또 다른 집들이 코앞에 있다. 그 아저씨가 코앞의 집에 산다. 층간 소음이 아니라 집간 소음이 골치다. 주정뱅이 그 아저씨 못지않은 성가신 이웃이 또 있다. 그 아저씨 옆방 사는 그 아줌마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으나 그 아줌마는 틈만 나면 마당에 나와 한숨을 쉬고 넋두리를 한다. 땅이 꺼지는 한숨이고, 천둥치는 넋두리다.

“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가? 그게 우리한테 무슨 이익이 되는가? 무엇보다도 우선, 어떻게 그 요구를 달성할 것인가. 그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그는 서슴없이 덧붙인다. “나를 매혹하지 못하거나 내 감정 생활에 아무런 중요한 의미를 획득하지 못했다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잘못이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까지 주장한다. “낯선 사람은 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솔직히 고백하면 내 적개심과 증오까지 받아 마땅하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의 첫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서울에 사람 사는 마을이 있다니….” 성석제, 이혁상, 정석, 이 세 사람이 성미산 마을에 부친 편지에도 부러움이 가득하다. <춤추는 숲>에 나오는 선한 사람들은 세상에 없는 별종들인 것일까. 의아하다면, 변성찬의 독립영화비행을 훑어보라. <춤추는 숲>의 성미산 마을이 공동체(共同體)가 아니라 공동체(共動體)라고 그는 말한다. “적/동지라는 쌍이 아니라 제3의 용어로서의 이웃”만이 연대의 보루가 될 것이라는 누군가의 호소를 <춤추는 숲>을 보고 나서야 약간 이해했다.

☞ <춤추는 숲>을 보고 나니 (완성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언젠가 털어놨던)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 후속편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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