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강우규 열사였다. 일제 요인 암살을 시도했던 독립운동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암살에 실패했던 강우규 열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요인 암살에 ‘성공’한 안중근, 윤봉길 의사만큼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않았다. 그런 세상을 보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고 그래서 강우규 열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우규 열사 기획안은 다큐프라임 공모에서 채택되지 못했다.
이후 기획방향을 수정해서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컨셉으로 다시 기획안을 제출했다. 강우규 열사와 결은 조금 다르지만 독립유공자 후손들 역시 사람들의 기억에서 소외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획안이 공모에서 채택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다양한 후손들에 대한 자료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반민특위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특히 후손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꽤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PD 입장에서 가장 먼저 귀에 들어왔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럴 경우엔 제작진이 별 어려움없이 모든 후손들의 인터뷰를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반민특위 요인들이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도 ‘소외된 독립운동가’라는 개인적인 관심사에 부합했다. 생각해보니 나조차 반민특위 위원장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반민특위 후손 모임을 이끌고 계셨던 김정륙 선생(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드님)을 찾아뵀다. 하지만 그 만남이 결국 반민특위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렵고 힘든 이야기만 늘어놓을 거란 내 예상과 달리 김정륙 선생은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의 정신과 품격을 그대로 지니고 계셨기 때문이다. 소위 ‘안광’이 너무나 맑고 깊었다. 그게 2012년 초였다.
그렇게 1년여를 제작하던 중 지난 4월8일, 갑자기 담당 PD인 내가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이 났다. 사실상 다큐멘터리 제작이 중단된 것이다. 8월로 예정됐던 방송도 언제 가능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너무나 황당했고 후손들을 어떻게 볼까 걱정이 됐다.
한편으론 ‘현실적으로’라도 이해해보려고 참많이 애써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장의 정치현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지난 대선과정에서부터 논란이 심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이야기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교과서에서조차 다루는 반민특위였다. 아무리 교육방송이 타 지상파처럼 힘이 없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다루지조차 못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인사발령 소식을 듣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꼭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전화 속 목소리는 다름 아닌 ‘김정륙 선생’이었다. 지금 내가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는 거지?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