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를 ‘거의’ 하지 않게 되고 결국 ‘아예’ 하지 않게 되는 데는 두번의 선거면 족했다. 지난해 총선이 전자, 대선이 후자였다. 트위터를 하면서 평소 오프라인으로 어울리지 않던 사람들을 팔로윙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게 큰 착각임을 새삼, 그러나 절실히 깨달아서다. 트위터로 말을 트게 된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유형의 사람들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던 것뿐이었다. 얼굴을 몰라도 성향은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그 의견이 정말 세상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일. 1분도 쉬지 않고 세상의 흐름에 발맞추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트위터 이용자들의 흔한 착각. <의도적 눈감기>에는 이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비유가 등장한다. “나이가 들수록 같은 경험, 같은 친구, 같은 생각들이 더 많이 축적되고 강물은 더 빠르고 더 거침없이 흐르게 된다. 저항은 점점 더 줄어든다. 저항이 없을 때는 쉽고 편안하고 확신이 선다. 그러나 동시에 강바닥의 옆면, 즉 강둑은 점점 더 높아진다. 우리가 같은 조직 문화 속에서 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공동체 안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할수록, 강바닥은 점점 더 깊어지고 강둑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간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효율적으로 흐르기 때문에 기분은 좋다. 단지 강둑 너머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의도적 눈감기>는 책 제목 그대로, 우리가 어떻게 덜 보고 더 확신하며 더 본다고 착각하는지를 짚어준다.
사랑은 의도적 눈감기가 가장 적극적이고 사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존재를 뒤흔드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마거릿 헤퍼넌(TV다큐멘터리 프로듀서와 기업체의 CEO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은 선천적 심장 질환을 갖고 태어나 수없이 수술을 감내해야 했던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던 경험을 들려준다. 그녀의 남편은 마흔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 그의 죽음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지만 그 가능성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나는 마치 나의 남편이 우리 또래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건강한 것처럼 행동했다.” 무엇보다 끔찍한 일은 아동학대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바로 이런 눈감기 행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4장 ‘한계: 뇌에서 일어나는 제로섬 게임’은 수면 부족과 정보/물자 과잉에 지친 현대인들의 한계상황을 지적한다. 소속감이 주는 안락함이 결국 왕따에 대한 공포로 이어지다보니 우리가 순응적인 인간으로 획일화되는 현상 역시 이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그냥 못 본 척 눈감고 넘어가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임을 알고 있지만, 당장 살고 보자는 마음이 둔 패착. 회의 시간에 상사의 이상한 아이디어에 대해 한마디 하려다 꾹 참는 일, 배우자의 잦은 야근에 외도를 의심하며 추궁하는 대신 합리화하는 일, 돈벌이를 위해 예상되는 직업병의 위험을 무시하는 일. 여기에 더해 금전적 인센티브는 타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미래를 희생시켜 언 발에 오줌 눌 이유로 애정과 돈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원인과 문제점은 알았는데 해결을 할 수가 없다. 그래, 이번 한번만 눈감고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