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아이의 차이는 장난감의 가격뿐이라 했던가. 미니 사륜모터카에 흠뻑 빠진 아이와 자동차에 매료된 남자의 심리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장난감은 장난감일 뿐이라는 불편한 이분법이 숨어 있다. 어른이 되면 장난감의 역할을 대신할 더 비싼 무언가를 대체해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해야 할 만큼 값비싼 장난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예를 들면 프라모델이나 디오라마(배경 위에 축소된 모형을 설치해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것)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의 취미생활이라 일축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은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 프라모델 중에서도 건담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건프라’의 세계에 대한 해설서, <건프라이즘>이다.
제목처럼 건담은 하나의 이념이며 완성된 우주다. 그중 특히 건프라는 일본에서는 관련 서적만 수백권이 넘을 정도로 대중적인 취미지만 인터넷, 모형전문지에서 간혹 단편적인 정보를 접하곤 하는 우리에겐 여전히 생소한 분야다. 건담 전문 잡지 <건담 에이스>에 글을 기고 중인 저자 이시이 마코토는 이 책을 통해 초심자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건프라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자칭 건담 전문가인 저자는 1980년 최초의 건프라인 1/144 건담이 탄생한 이래 건프라의 대중화 시대를 연 MG(마스터 그레이드) 등급을 기준으로 건프라의 흥망성쇠를 훑어나간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주제에서 풍기는 인상과 달리 내용이 폐쇄적이거나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건프라’라는 하나의 분야가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변해왔는지 그 흐름을 쉽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한편의 인문 해설서로 봐도 충분히 재미있다. 물론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각종 원화와 카탈로그, 개발자들의 인터뷰와 같이 건프라 마니아를 만족시킬 만한 풍성한 자료는 기본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 만큼 즐겁고 모르는 사람도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성실한 가이드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