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여행 중인 딸 헤일리(알리슨 필)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부랴부랴 딸을 찾아 로마에 온 은퇴한 오페라 감독 제리(우디 앨런)는 우연찮게 딸의 약혼자 미켈란젤로의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 실력에 반해 그에게 오페라 오디션을 제안하지만, 장의사로 평생을 살아온 그를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한편 미국의 유명한 건축학자 존(알렉 볼드윈)도 로마로 여행을 왔다가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 온 잭(제시 아이젠버그)을 만나게 된다. 잭은 여자친구의 친구인 (이름까지 섹시한) 모니카(엘렌 페이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존은 그런 잭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건네지만 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감상에 젖는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 로마에 여행 온 미국인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에서 로마로 신혼여행을 온 밀리는 남편 안토니오의 친척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미용실을 찾아 로마 시내로 나갔다가 길을 잃는다. 한편, 호텔에서 밀리를 기다리던 안토니오는 콜걸 안나(페넬로페 크루즈)의 오해로 얽힌 방문으로 당황스러운 상황에 휘말리게 된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 평범한 회사원 레오폴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로마를 들썩이게 하는 스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리둥절하는 것도 잠시, 어느덧 레오폴도는 스타의 삶에 점점 익숙해져간다.
하나만으로도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질 듯한 이야기를 무려 네개나 펼쳐놓은 이 영화는 이렇게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을 능수능란하게 교차편집하며 진행된다. 사실상 이들의 이야기를 묶어주는 것은 말 그대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로마’라는 장소와 사건들의 ‘우연성’뿐이다. 특히 <로마 위드 러브>에서 이 우연성은 능청스러울 정도로 시치미를 떼고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뛰어넘거나 괄호친 다음, 아무렇지도 않게 ‘what if’(만약 그러하다면)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전작인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찾아가는 과거가 환상이었다면, <로마 위드 러브>에서는 그 지점이 등장인물들의 (이루지 못한) 꿈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신경쇠약 직전, 수다스럽기만 했던 우디 앨런이 오랜만에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서 지난 시간,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은퇴는 곧 죽음’이라 외치며 전세계를 떠도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딘가 무척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