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원본이 어딨어? 10년이 다 됐는데….” 한정연 디자이너가 쓸데없는 거 찾지 말라면서 찡긋한다. 목요일만 되면 편집장을 대신해 마감 독촉에 앞장서는 그에게 괜한 걸 물었다. 오래전엔 꽤 다정다감했는데 어쩌다 다혈질 헐크가 됐는지. 애먼 요구 하지 말고 기사나 빨리 출고해달라는 눈총에 떠밀려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로 돌아왔다.
2005년 봄, <씨네21>은 열돌을 맞았다. 전 편집장들에게 특별한 선물도 전달했다. 그들의 사진을 <씨네21> 표지처럼 디자인해 액자로 만들었다. 우스개 표제도 여러 개 얹혔다. “수지침의 달인 안정숙, 김정일을 살리다”, “일주일 완전정복 허문영의 슬로 스피킹 580”. 기사 마감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선물 포장하느라 온 정신을 팔았다. 그때 가짜 표지를 같이 만들었던 이가 한정연 디자이너다.
가짜 표지 만들던 가짜 편집장이 지금은 진짜 에디토리얼을 쓰고 있다. 인간 심보는 필시 이기(利己)의 부레다. 되로 준 선물, 말로 받고 싶다. 개편호에 어울리는 특집 거리를 궁리하다 알량하고 뻔뻔한 생각에까지 미쳤다. 8년 전 가짜 표지 선물에 대한 답례로 그들에게 진심을 담은 에디토리얼을 선물로 달라고 칭얼댔다. 전 편집장들이야말로 가장 충실한 독자일 테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씨네21> 18주년 창간기념호 특집 ‘만약에 내가 편집장이라면’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들이 보내온 선물 박스 안엔 응원만큼 근심도 가득했다. 기본으로 돌아가라. 주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라. 독자에게 충실하라. 끝까지 질문하라. 보다 오만해져라. <씨네21>도 이제 열여덟 성인이다. 그들의 근심이 잔소리가 아니라 더없는 응원임을 모르지 않는다.
대대적인 지면 개편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영화에 집중하겠다는 본령의 의지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네스코프, 스탭 37.5° C, 영화탐독 등 그동안 소흘히 다뤘거나 유령처럼 여겨졌던 지면들을 적극적으로 되살리려고 한다. 일례로 지난 몇년 동안 한국영화 촬영현장을 둘러보는 일이 점점 드물어졌다. 현장의 목소리를 제때 전하지 못하면서, <씨네21>의 발걸음도 다소 느려진 것 같다.
‘한창호의 오! 마돈나’ , ‘표창원의 콜드 케이스’는 보다 풍성한 영화읽기를 가능케 해줄 지면이다. 에세이 꼭지가 전보다 줄었으나 뮤지션 이적의 ‘이적표현물’과 소설가 김영하의 ‘영하의 날씨’가 그 허전함을 너끈히 메워주리라 기대한다. 전 <씨네21> 기자였던 김현정의 피카추(어떤 꼭지인지 한번 맞혀보시라)도 신설한다. ‘한국영화 블랙박스’ 새 필자로는 정윤철 감독과 최현용 영화정책가를 모셨다. 금태섭 변호사도 북 지면 칼럼의 새 필자로 가세했다.
매 맞을까, 상 받을까. 진짜 독자들의 진짜 생일선물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