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정원>에서 여배우의 친구로 출연한 배우 김삼화(왼쪽)와 홍영순씨가 1957년 홍콩공항에서 함께 찍은 사진.
<이국정원>의 아역 배우(!)가 55년 만에 짠 하고 나타났다. 그사이 다섯살의 꼬마 아가씨는 당시의 얼굴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나이 지긋한 어른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국정원>에서 여주인공 방음(우민)의 아역으로 출연한 홍영순씨는 딸에게서 영화가 발굴/복원됐다는 소식을 듣고 영상자료원에 먼저 연락을 취했다. 멋모르고 출연한 생애 유일의 영화가 영화사적으로 의미있는 작품이었던 데다가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그 시절의 일들을 두눈으로 확인하고픈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홍영순씨는 어린 시절을 홍콩에서 보냈다. “아버지가 1956년부터 1959년까지 한국은행 홍콩지점장으로 근무하셨다. 당시 한국은행이 재외공간의 역할도 분담했는데, 한국에서 귀한 손님들이 오면 우리 집에서 만찬을 열곤 했다.” <이국정원> 팀도 홍영순씨네 집에 초대받았다. 그때 홍성욱, 홍영순 남매가 뛰노는 모습을 본 감독이 즉석에서 아이들을 영화에 캐스팅했다. 남매는 서울까지 날아가 촬영을 했다. 왕복 비행기 티켓은 영화사에서 제공했다. 단역으로 출연하는 아역들에겐 “파격적인 대우”였다. 그녀는 서울의 고궁에서 밤샘촬영을 했던 일, 반사판에 달궈진 뜨거운 시소를 꾹 참고 탔던 일 등이 아직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시소를 붙잡아야 하는데 너무 뜨거워서 잡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이걸 참고 견디며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웃음)” 이후 그녀는 영화와는 무관한 삶을 산다.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했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 그럼에도 <이국정원>은 그녀의 삶에 진귀한 추억을 안겨준 소중한 영화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영화의 발굴이 누군가에겐 빛바랜 추억의 복원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