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간 지하철에서 읽은 일본 미스터리 소설들에 대한 총정리 시간.
“여자를 찾아라”(Cherchez la femme)라는 해묵은 문장. 누아르영화에서 특히 그러하지만 대개의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에서 통용되는 이야기다. ‘예뻐서 팔자 사나운’ 인상의 여자는 클리셰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은 긴다이치 고이스케 시리즈인데, 이런 당부의 말이 실려 있다. 요코미조 세이시가 소설을 쓰던 때에는 상상도 못해봤음직한 말이다. “이 작품에는 오늘날 인권 보호의 견지에 비추어 부당하거나 부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어구나 표현이 있습니다만, 작품 발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문학성에 비춰볼 때 저작권 계승자의 양해를 얻어 일부를 편집부의 책임하에 고치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아름다운 여자는 절대 사연없이 등장하지 않는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세계에서 여자의 색기란 핏줄로 이어진 남자들조차 유혹하고 파멸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책은 긴다이치 고이스케의 마지막 사건을 다루고 있으니 <옥문도> <혼진 살인사건>과 같은 시리즈 이전 책들을 즐긴 독자라면 놓치지 마시길. 족보정리하느라 머리가 터져나갈 듯한 1권의 서두 부분을 지나고 나면 요코미조 세이시 특유의 귀기어린 살인사건과 막장드라마 뺨치는 가족의 비밀이 즐거운 독서를 보장한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엿보는 고헤이지>도 여자 얘기를 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긴 하지만, 교고쿠 나쓰히코라는 작가의 특성은 이렇다. 그의 책에서는 남자건 여자건 다 조금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정상성과 딱 종이 한장 차이로 영원히 갈려버린 기묘한 습벽에 대해 이 남자만큼 잘 그려낼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지하철에서 읽다 내려야 할 역이 되어 무심코 책을 덮었다가 표지의 여자를 보고 “얼굴 이쪽으로 돌리지 마! 아니, 이쪽으로 돌려봐! 얼굴이 있긴 한 건가!”라고 외치고 싶은 으스스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교고쿠 나쓰히코 소설을 읽는 재미. 그래서 밤에는 읽지 않는다. 잠은 소중하니까.
아즈마 나오미의 <사라진 소년>에 나오는 여자는 의뢰인이고, 사라진 소년의 선생님이다. 앞선 두 소설에 비하면 장르적으로 누아르라 그런지 무대가 가장 현재에 가까워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 탐정은 술 좋아하는 한량이다. 영화 <탐정은 바에 있다>와 주인공이 같은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인데, 그야말로 순정 마초라는 건 이 주인공을 두고 하는 말일 테다. 마지막에 책장을 덮으면서 몹시 키득거리게 된다. 여자 밝힘증은 때로 정의사회 구현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