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김민경 PD의 외할머니인 강상희씨의 개인사로 출발한다. 강상희의 남편 김봉수는 제주시 애월읍 납읍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4.3 사건의 희생양이 되어 총살당했다. 강상희는 딸과 함께 10년 만에 남편과 시어머니의 무덤을 찾고 이후 카메라는 제주를 돌며 4.3 당시 학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가며 그 공간을 화면에 담는다. 돌과 나무, 물, 바람, 곤충 등 자연의 모습과 더불어 제주도가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나오는 텔레비전, 자동차, 라틴댄스를 추는 사람들의 모습들도 카메라는 함께 보여준다. 영화는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4.3 사건 전후 제주도에서 이주해 정착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1949년 이덕구 부대가 토벌대와 맞서 최후의 항전을 벌인 이덕구 산전을 비롯해 주민들의 희생이 있었던 곳을 찾아가던 영화는 강정 마을까지 이른다. 학살이 일어났던 그곳에서 영화는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여러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강상희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비념>은 언급한 줄거리의 요약만으로는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이다. 영화는 4.3 사건이나 강정 사태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거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설명하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사용되는 내레이션도 없고 인터뷰도 많지 않다. 인터뷰가 나와도 말하는 사람은 많은 장면에서 보이지 않고 다른 화면으로 대체된다. 영화는 관객의 정서를 인물이나 이야기의 극적 전개로 끌어내지 않는다. 영화가 치중하는 것은 먼저 바위, 숲, 나무, 뱀, 쥐, 떨어진 귤, 눈 위의 발자국과 같은 이미지들이다. 영화는 자연의 정물과 인간의 풍경 사이에서 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연적 존재이지만 자연과 분리되어서 풍경으로밖에 볼 수 없는 인간의 시선 속에서 기억과 흔적을 더듬어간다. 가까운 것 같지만 한없이 멀리 떨어져 우리를 꿈꾸게 만들고 꼼짝 못하게 만드는 권력과 반대로 흔적은 아무리 멀어도 가깝게 느껴지고 우리를 깨어나게 만든다. <비념>은 백 마디의 말을 선택하는 대신 한 할머니에게 새겨진 자국에서 시작해 이 시대의 우리에게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4.3을 풍경의 바깥에서 깨어나게 만든다.
비념은 큰 규모의 굿과 다르게 무당 한 사람이 방울만 흔들며 빌고 바라며 기원하는 작은 규모의 무속 의례다. 영화는 제주의 무속 의례로 시작한다. 영화의 제목과 시작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애도이다. 영화는 그것의 방법으로 불편함과 낯섦을 택한다. 영화는 친절하지 않다. 영화가 친절하게 제시하는 것 같은 주민들이 희생된 곳의 지도조차 도보여행 코스인 올레길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한때는 우리의 아픔이자 슬픔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낯설게만 느껴지는 그것을 영화는 우리에게 같이 비념하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