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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시속 200km로 질주하라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3-04-02

자동차 추격 신에 사용될 새로운 장비 스콜피오암 테스트 현장

스콜피오암을 장착한 자동차.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한 자동차 극장은 대낮부터 분주했다. 영화를 감상하러 온 관객 때문일 리는 없다. 괴상하게 생긴 자동차 한대와 평범한 자동차 한대가 쫓고 쫓기는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괴상하게 생긴 자동차는 보닛 앞쪽으로 카메라를 매달고 있었고, 평범한 자동차는 보닛 위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있었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카메라를 장착한 두 자동차의 긴박감 넘치는 추격전을 지켜보니 평범한 카레이싱 연습은 아닌 듯했다. 특히 보닛 앞쪽으로 카메라를 매달고 있는 자동차는 처음 보는 생김새라 한눈에 들어왔다. 자동차 지붕 위에 긴 크레인을 설치하고, 크레인 한쪽 끝에 헤드를 연결한 뒤 카메라를 헤드에 장착한 모습이었다. 이것이 바로 할리우드에서 자동차 추격 신이나 인물(혹은 동물)이 빨리 달리는 장면을 찍는 데 주로 쓰이는 스콜피오암(scorpio arm)이라는 특수 촬영 장비다. 촬영 장비 업체인 서비스비전코리아(대표 이학송)가 국내 첫 도입한 스콜피오암의 테스트 촬영 현장이 3월25일 공개됐다.

크레인 헤드 자동차가 한몸처럼

스콜피오암은 크게 두 가지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촬영 장비다. 크레인과 헤드가 그것. 자동차 지붕 위에 연결된 크레인은 헤드와 카메라를 단단하게 고정한 채로 상하좌우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스콜피오암의 뇌”라고 불리기도 한다. 평평한 도로 위를 달리든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리든 헤드는 카메라를 항상 수평으로 유지한다. 비행기나 선박의 기울기를 평평하게 유지시키는 ‘자이로’(gyro stabilized head, 잠수함이나 전투기 등 군수산업에서 주로 쓰이는 부품이다)라는 특수 기구가 헤드에 장착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모든 자동차가 스콜피오암을 차 지붕 위에 장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크레인과 헤드 그리고 카메라를 합친 무게가 약 1톤에 달하는 까닭에 대부분의 자동차는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차 지붕이 내려앉을 위험이 있다. 스콜피오암을 장착한 이 자동차는 ‘벤츠 ML63amg’라는 모델로, 벤츠의 자회사이자 차량 개조 전문 회사인 AMG가 벤츠 ML63이라는 SUV 차량을 개조한 것이다. 자동차에는 총 6명이 탈 수 있다. 운전자는 감독이 원하는 그림에 맞게 운전을 하고, 헤드 컨트롤러는 조수석에 앉아 조이스틱을 이용해 원격으로 카메라를 움직인다. 뒷 좌석의 크레인 컨트롤러 역시 조이스틱을 사용해 크레인을 움직인다. 그 옆에는 감독이나 촬영감독이 모니터를 확인한다. 마지막 좌석에는 촬영팀에서 포커스를 담당하는 포커스 풀러(충무로에서는 보통 촬영팀 퍼스트가 맡는다)가 탄다. 포커스 풀러는 모니터를 확인하며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춘다. 비행기의 모든 좌석 뒤에 작은 모니터가 달려 있는 것처럼, 자동차 안의 모든 좌석에도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어 자동차 밖의 카메라가 찍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크레인과 헤드 그리고 자동차는 한몸처럼 움직인다.

최첨단 장비인 만큼 여러 장점이 있지만 스콜피오암은 일단 안전하다. 일명 ‘슈팅카’라 불리는 개조 차량에 카메라를 세팅하는 기존의 충무로 촬영 방식은 촬영팀 서너명과 카메라가 자동차 밖에 노출되어 있어 그만큼 위험했다. 그러 다보니 자동차는 안전을 이유로 아무리 빨리 달려봐야 70km 정도의 속력밖에 내지 못했다. 정정훈 촬영감독은 “그간 한국영화의 자동차 추격 신이 다른 장면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도 느린 슈팅카 속력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자동차 추격 신을 찍을 때마다 자동차의 느린 속력을 속이기 위해 배우가 긴박한 척하는 연기를 주로 했다”며 “그러면 뭐하나? 인물 뒤의 배경은 느린 속도로 지나가는데. 느린 것도 문제지만 스탭이 자동차 밖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슈팅카는 위험천만하다”고 설명한다. 반면, 스콜피오암은 모든 스탭이 자동차 안에 안전하게 있으면서 최대 200km의 속력까지 달리며 원격으로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빠른 속력으로 달리며 촬영이 가능한 데다가 크레인의 움직임이 기존 장비에 비해 유연한 것도 스콜피오암의 장점이다. 덕분에 카메라의 움직임이 부드럽게 화면에 담길 수 있게 됐다. <라스트 스탠드> 때 스콜피오암과 비슷한 방식의 촬영 장비를 쓴 적 있는 김지용 촬영감독은 스콜피오암의 국내 도입 소식을 반가워했다. 그는 “<라스트 스탠드>의 옥수수밭 카체이스 신을 비롯한 자동차가 나오는 대부분의 장면을 찍을 때 스콜피오암과 비슷한 방식의 촬영 장비를 썼다”며 “옥수수밭이 꽤 울퉁불퉁한 지면이었음에도 크레인이 카메라를 수평으로 고정한 채 모든 방향으로 부드럽게 움직이더라. 아마 스콜피오암이 충무로 현장에 상용화되면 한국영화의 카체이스 신이 할리우드 못지않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스콜피오암 자동차 내부.

기존의 슈팅카와 달리 세팅이 필요없는 게 장점

현장에 도착해 자동차에 크레인과 헤드, 카메라 등 여러 장비를 일일이 세팅해야 하는 기존의 슈팅카 방식과 달리 스콜피오암은 자동차가 현장에 도착하기만 하면 세팅이 간단하게 완료된다. 장비 세팅 시간이 절약되는 대신 자동차와 카메라의 움직임, 합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게 된다. 얼마 전 자동차 광고 촬영에 스콜피오암을 썼다는 한 프로듀서는 “세팅하는 데 반나절을 보내는 슈팅카 방식에 비하면 스콜피오암은 확실히 진행 속도가 빠르더라”며 “세팅하는 동안 자동차, 카메라의 움직임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만족할 수 있는 화면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다”고 스콜피오암의 빠른 현장 세팅 시간에 만족해했다.

스콜피오암은 3월 한달 내내 테스트를 거쳤다. 스콜피오암을 개발한 서비스비전(motor optionbcn.com)이 본사 기술자를 보낼 정도로 테스트는 엄격하게 진행됐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서비스비전의 장비 기술자 페란 마스는 “안정성을 가장 중점에 두고 테스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테스트가 끝났다고 해서 바로 충무로 현장에 투입되진 않는다고 한다. 서비스비전코리아 이학송 대표는 “스콜피오암은 드라이버와 크레인 컨트롤러, 헤드 컨트롤러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며 “지금부터 자체 팀을 꾸려 여러 상황을 설정해 훈련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콜피오암을 충무로 현장에 볼 수 있는 건 언제쯤이 될까. “4월 말 촬영 예정인 프로젝트를 고려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건 트레이닝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는 게 이학송 대표의 설명이다. 현장에 상용화될 때까지 지켜봐야 알겠지만, 성능과 안정성만 놓고 보면 한국영화의 자동차 추격 신은 스콜피오암 도입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것 같다.

안정성을 중점적으로 테스트했다

스콜피오암을 개발한 서비스비전의 장비 기술자 페란 마스, 하비에르 몰리네르, 카를로스 세바스티아

-20여일 전에 한국에 들어와 지금까지 스콜피오암을 세팅한 뒤 테스트했다고 들었다. =페란 마스(가운데)_자동차를 비롯한 크레인, 헤드 등 각 부품을 따로 들여와 한국에서 세팅해야 했다. 스페인에서 세팅한 채로 해외에 나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세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테스트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페란 마스_안정성이다. 특히 차의 지붕 위에 고정된 크레인이 빠른 속력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테스트했다.

-현장에서 세팅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카를로스 세바스티아(오른쪽)_크레인과 헤드 그리고 카메라를 일일이 세팅해야 하는 기존의 슈팅카 방식과 달리 스콜피오암은 차가 현장에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세팅하는 시간에 자동차가 어떤 식으로 달리는지 합을 맞추는 데 공을 들일 수 있다는 게 스콜피오암의 매력이다. 하비에르 몰리네르(왼쪽)_(휴대폰을 꺼내 여러 마리의 개가 빠른 속도로 뛰어가는 광고 영상을 보여주며) 이 장비는 차 추격 신에만 쓰이는 게 아니다. 이 광고처럼 개를 비롯한 동물이나 사람이 빨리 달리는 장면도 안정적으로 촬영 가능하다. (그 광고 영상의 메이킹필름을 다시 보여주며) 인물이나 동물이 긴 거리를 달리는 장면을 찍는 데 효과적이다.

-테스트 결과에 만족하나. =(모두 함께) 물론이다! 최대 200km 속력으로 달려도 조금의 흔들림없이 피사체를 담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