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사 5층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과거엔 도서관 안쪽에 또 다른 방이 하나 더 있었다. 오래된 신문들을 연도별로 모아놓은 자료실이었다. 가장 오래된 신문은 1961년 무렵의 것으로 기억한다. 설 혹은 추석 합본호를 만들려고 하면, 무슨 이벤트처럼 30, 40년 전 한국영화에 관한 기사들을 써야 했는데, 그때마다 이 자료실을 들락거렸다. 옛날 신문 말곤 변변한 자료가 없었다. <씨네21> 사무실은 도서관 바로 아래층이었지만, 신문 스크랩 뭉치들을 몽땅 나르진 못했다. 책상 위에 커다란 신문 더미들을 펼쳐둘 여유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담당 직원분께 양해를 구하고 그곳에서 밤샘 마감을 한 적이 그래서 여러 번이다. 마감 쪼는 데스크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공간은 요긴했다. 회사 안에 있으나 누구도 오가지 않는, 그야말로 비밀 아지트였던 셈이다.
이 난공불락의 요새에도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몇 차례 밤샘을 끝내고나서야 이 요새가 생물학전에 아주 취약한, 아니 이미 오염된 요새임을 알게 됐다. 코에 들러붙은 먼지는 수도 없이 재채기를 유발했다. 피부를 파고든 좀벌레 때문에 온몸을 수시로 긁어야 했다. 회사 근처 목욕탕에서 코 풀고 몸 닦았지만 증세는 쉽사리 호전되지 않았다. 아지트라고 믿었는데 감옥이거나 혹은 전장이었다. 이제는 좀처럼 쓰지 않는 보도 문투를 보고 킥킥대고, 기사의 행간을 상상으로 이어붙이면서 흥분하고. 신문 기사를 일일이 손으로 뒤지고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은 무척이나 흥미로웠으나, 먼지 중대의 가미카제 특공대식 돌진과 좀벌레 소대의 게릴라 공격을 묵묵히 감내할 만큼의 즐거움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기획회의 때마다 동료들이 나서서 “이번 설에는, 이번 추석에는” 하면서 등을 떠밀 때 적지 않게 반항했던 걸 보면. 한국영상자료원이 2000년대 중반부터 펴내기 시작한 <신문기사로 본 한국영화>는 내겐 치료제와 같은 책이다. 주요 일간지의 영화면은 물론이고 영화잡지의 기사까지 모조리 수록한 이 책을 구하지 못했다면, 한국영화의 시시콜콜한 뒷이야기를 수집하는 관심은 오래전에 시들었을 것이다. 1940년대 중반에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요정에서 러시아, 미국 등지에서 밀수한 포르노물을 보다 검거된, 이른바 도색영화회 사건 기사를 이 책에서 손쉽게 접하지 못했다면 게으른 내가 관련 칼럼을 연재하겠다고 큰소리칠 수 있었을까. 이번호 특집에선 8명의 <씨네21> 필자들이 심중에 꼭 품고 있던, 20여권의 마법의 책을 소개한다. 내 경우와 달리, 여덟명의 영화 글쟁이들은 정신의 각성제 혹은 치유제를 내밀었다. 그들이 일러준 마법의 책을 읽고 동한다면 내친김에 자기만의 마법의 도서관도 만들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