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떤 ‘물건’이 나오려고. <미스터 고>의 제작진은 현재 4년째 출산의 진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거대한 고릴라 두 마리가 이 난산의 주범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호랑이조차 150컷 이상은 등장하지 않았는데, <미스터 고>의 고릴라들은 무려 1천컷이 넘는 장면에 등장하며 주연배우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 난산의 원인은 깐깐한 ‘부모’에게도 있다. <미스터 고>의 연출적, 기술적 총괄 지휘를 맡은 김용화 감독과 정성진 슈퍼바이저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인 디지털 캐릭터가 완성되기까지 자식 같은 고릴라들을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 없다. 그들의 공식적인 출산 예정달인 7월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미스터 고’(릴라)가 자라고 있는 덱스터디지털을 찾아 한국 영화계의 최전방에 자리한 VFX 기술의 양수 속을 파고드는 수밖에. 그리고 이미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라는 ‘아이’를 함께 키워본 경험이 있는 김용화 감독, 정성진 슈퍼바이저에게 물었다. ‘미스터 고’는 어떤 아이인가요?
고릴라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뭔가.
김용화_우선 드라마 진행을 재미있게 하려면 주인공 링링이 우리가 생각하는 고릴라 중에선 가장 큰 종이어야 했다. 기본적인 외골격이나 느낌 자체는 웅장하고 동물스러운 고릴라여야 한다는 생각이 출발 지점이었다.
보다 동물의 본성이 남아 있는 모습을 선택했다는 건 ‘야구 하는 고릴라’라는 설정 때문이었나. 고릴라의 특성에 대한 선택 기준이 궁금하다.
김용화_그런 이유도 분명히 있다. 가냘픈 존재가 인간의 스포츠 세계에 들어와서 활약한다는 식의 설정이 그리 재밌어 보이지 않았다. 정말 느려 보이는 애가 나와서 엄청난 파괴력으로 승부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또 한 가지, 그렇게 느릿느릿하고 표현을 안 하는 친구가 더 큰 울림을 줄 것 같다는 연출적 판단도 있었다. 그게 벌써 4년 전 일이네. 정본부는 어땠어?
정성진_난 다른 지점에서 생각했다. 고릴라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니 이빨이 몇개인지, 콧구멍 면적은 얼마나 되는지, 그런 디테일들에 대해 조사를 많이 하고 신경을 썼다. 고릴라가 실제로 보면 정말 못생겼다. 그런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줄 건지 영화적으로 표현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고릴라의 표정, 눈빛, 하품할 때 입의 모양 등 많은 부분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어, 고릴라가 별로 안 나오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콘티 작업을 하면서 보니 고릴라가 안 걸리는 장면이 없는 거다. 알고 보니 고릴라는 대사가 없으니 시나리오상에서는 잘 안 보였던 거더라고. (웃음) 그래서 디지털로 고릴라를 구현하기 전에 컨셉 스케치를 하면서 고릴라가 등장하는 장면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들을 했다. 배우의 뒤편에 고릴라가 걸리면 구석에 앉아서 뭐라도 뜯어먹는 상황을 설정한다든지.
<길버트 그레이프> 같은 고릴라
링링의 롤모델이 있었나.
김용화_처음에 정성진 본부장과 둘이 링링의 실제 모델을 찾으러 미국도 가고 큰 동물원들도 많이 다녔다. 그러다가 우연히 일본 우에노 동물원에 하오코라는 수컷 고릴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진을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체적보다 조금 작긴 하지만 외형은 닮았더라. 정 본부장과 내가 1차로 그곳에 가서 확인을 하고 ‘맞다, 이 정도의 모델이면 되겠다’ 생각해 우리 애니메이터들을 전부 일본에 보냈다. 관찰하라고. 그게 링링 캐릭터의 시발점이었다.
정성진_나는 처음에 고릴라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이게 동물이야, 사람이야. (웃음) 털북숭이 동물이 가부좌를 하고 있더라. 감독님이 고릴라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겠다고 할 때만 해도 고릴라를 그저 동물 캐릭터로 인식했었는데, 보면 볼수록 사람과 닮은 점이 많은 거다. 마치 두세살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를 만들 때 고릴라의 사람 같은 요소들을 넣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사람같이 표현하면 안될 텐데 하는 걱정도 들었다.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지금도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 너무 힘들다.
김용화_하오코의 특성이 영화에 반영되기도 했다. 얘는 자기가 관심있는 게 있으면 의식하지 않는 척하더라. 만약 (책상에 놓인 휴대폰을 가리키며) 여기에 관심이 있다면, 한참 딴짓을 하고 눈치를 보다가 슬쩍 집는다. 그런 식으로 링링이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미스터 고>에 나온다. (좌중 웃음을 터뜨리자) 나는 이런 반응이 재미있다. 내가 이 얘기를 했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 말이다. 사람들은 동물을 바라볼 때 자신들이 동물인 것을 잊고 있지만, 동물 중에서도 자신들이 가장 행복하고 위에 있다는 걸 발견하는구나 싶더라. 나쁘게 얘기하면 교만하고, 좋게 말하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게 인간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얘기가 좀 무거워지네. (웃음)
디지털 캐릭터로 만들기 전, 막연하게나마 구현하길 바랐던 고릴라의 습성이나 개성이 있었나.
김용화_1년 가까이 프리 프로덕션 작업을 하면서 정성진 본부장이 아티스트들과 함께 굉장히 많은 모델링을 가지고 왔다. <미스터 고>에 고릴라 캐릭터가 두 마리 나오는데, 한 마리(링링)는 큰 덩치에 굉장히 우둔해 보이고, 비인간화되어 있으며, 동물스럽다. 그러나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 영화 말미에는 어쩌면 저 친구가 인간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겠구나 싶은 캐릭터의 모델링과 정서를 가져왔다. 다른 한 마리(레이팅)는 링링의 대적자로서 날렵하고 기민하며, 충분히 의인화해도 어색하지 않을 고릴라다. 그것이 <미스터 고>에 등장하는 고릴라들의 영화적 특성이었고, 정 본부가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로랜드 고릴라(링링) 한종, 마운틴 고릴라(레이팅) 한종을 모델링해왔다.
정성진_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우리 고릴라 캐릭터는 때려도 때려도 아프다는 소리도 안 하고, 덩치만 큰 바보 같은 존재라고. 시나리오의 링링을 생각할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이 든 할아버지 혹은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시장통에서 쑥 파는 할머니 같은 이미지. 그런 링링의 특성을 행동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노력을 많이 했다.
<킹콩> <혹성탈출> 등 고릴라에 대한 수많은 레퍼런스 영화들이 있었을 텐데, 어떤 작품들을 참고했나.
김용화_나는 <길버트 그레이프>를 봤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영화는 ‘터칭’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관객이 ‘쇼’를 보러 극장에 오는 건 아니니까. 고릴라가 얼마나 리얼한지, 그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나. 5분? 아니 3분도 안 갈 거다. 감독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관객에게 어떤 감정적 울림을 보이느냐 하는 거다. 그런 점에서 우리 영화에 가장 좋은 레퍼런스 영화는 <길버트 그레이프>가 아닐까 싶었다. 조니 뎁이 지적장애 동생(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을 돌보는 이야기인데…. 내가 평생에 걸쳐 만들고 싶었던 그런 영화다. 나는 <길버트 그레이프> 같은 감성이 <미스터 고>를 채우지 못하면 제작비 250억원을 다 날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기술로만 승부해 끝까지 가려고 한다면 그건 큰 패착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지. 나는 솔직히 말해 <킹콩>은 두려워서 안 봤고 <길버트 그레이프>만 죽어라 봤다. 좀 과잉된 표현이지만, 거기서 영감을 많이 끌어왔고 나머지 기술적인 부분은 우리나라의 톱 슈퍼바이저들과 3D 크리처물을 만드는 당대 최고의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다 모였는데, 못하겠냐는 생각을 했다.
정성진_나는 완전 반대다. 고릴라 나오니까 <킹콩> 봐야지, <콩고>도 보고, 조금 있다 <혹성탈출> 개봉하는데 큰일났다 싶었지.(웃음) 나는 그랬다. 여태껏 VFX를 쭉 해왔고, <스타워즈> <블레이드 러너>를 좋아해서 이 일을 하게 됐고, SF 좋아하고, 로봇 좋아하고, 애니메이션 좋아하고. 그런데 링링이 주인공인 <미스터 고>는 내가 이제까지 해온 VFX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 위치한 영화였다. 내가 감독님에게 많이 배운 것이 그런 연출적인 지점이다. 보통 VFX 하면 생각하는 게 멋진 장면들이다. 예를 들어 <어벤져스>를 보면 헐크마저 멋있게 나온다. 그런데 우린 거꾸로 바보 컨셉으로 가는 거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영화가 있을까’ 싶다. <미스터 고>는 할리우드에서 디지털 캐릭터를 바라보는 관점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영화다. 감독님이 아까 감성을 얘기했는데, 우리가 무조건 멋진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디지털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면 이건 분명 VFX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지점이 아닐까 생각하고, 그걸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
디테일에 목숨걸다
사람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디지털 캐릭터를 만들려면, 기술적으로는 어떤 고민을 해야 하나.
김용화_얘기가 좀 커질 수 있는데, 우선은 디테일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를 만들 때 원했던 게 바로 그 지점이었을 것 같다. 이상한 괴물 같은 나비족의 모습을 통해 어떻게 감정을 이끌어낼지가 그들의 고민이었을 거다. 그건 정말 기가 막힌 디테일로 가능한 일인데, 그 디테일을 디지털로 어떻게 표현할지가 관건이었다. 눈꺼풀이 살짝 올라가야하나 내려가야 하나, 눈빛이 어느 정도 흔들려야 하나, 그런 것들을 잘 표현해야 하는데…. 그래서 모션 캡처니 페이셜 모션 캡처니, 할리우드와 뉴질랜드쪽에 현재 나와 있는 디지털 기술들을 싹 훑어봤다. 알아보니 그들도 다 그런 디테일에 목숨을 걸고 있더라. 그런데 VFX도 결국은 사람이 만드는 거다. 우리가 하는 일이 감성을 숫자로 바꿔 디지타이징을 하는 거지만 5번 그림이냐, 6번 그림이냐, 7번 그림이냐를 선택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컴퓨터그래픽이 해결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인간 배우는 한번 캐스팅하면 그만이지만 디지털 캐릭터는 매 순간 몇개의 선택지를 놓고 어떤 후보를 선택하고 탈락시킬 것인지 ‘캐스팅’을 진행해야 한다. 어떤 캐릭터를 ‘지향’하고 어떤 캐릭터를 ‘지양’하나.
김용화_가장 직관적으로는 어색하지 않아야 한다. 그건 링링이나 레이팅이나 마찬가지 선택 기준이었다. 처음에는 우리도 경험이 없으니 어떤 후보가 좋은 후보인지를 잘 몰랐다. 굉장히 피상적이었는데, 숏들이 하나둘씩 나오면서부터 작업자들의 생각이 일치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은 아티스트들 스스로가 좋은 건 못하더라도 나쁜 그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그게 우리 영화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모두가 그리려 하는 고릴라가 닮아 있다. 나쁜 선택지를 빨리 걷어내야 좋은 그림을 위한 스킬 업도 가능하다. <미스터 고>가 지향해야 할 지점에 있어서 나를 비롯해 정성진 본부장과 VFX 식구들이 바라보는 곳이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이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애니메이팅 작업과 모션 캡처 비중이 7 대 3 정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도 실사 촬영을 할 때에는 고릴라 대역 배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김용화_김흥래 배우(링링)와 이준혁 배우(레이팅)가 고릴라 연기를 해줬는데, 노력을 많이 한 점에 감사하고 배우로서 존중도 한다. 하지만 모션 캡처가 <미스터 고>에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면, 우선 배우들이 필요 이상의 의인화가 많이 되어 있었다. 현장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이 블로킹 말고는 없었다. 그 점에 오랫동안 좌절하고 있었는데, <트랜스포머>에 참여한 케빈 스캇이라는 유명한 애니메이터를 초빙했을 때 그가 한 말이, “우리도 똑같아. 모션 캡처를 어떻게 하니? 다 그려야지”라고 하더라. (웃음) 다만 그들은 150~200숏을 그리는 데 500억~600억원을 받는 거고, 우리는 800숏을 120억원에 소화하려니 사람들이 잠을 못 자는 거지.
정성진_처음에는 나도 인간 배우들을 그야말로 디지타이징하려고 했다. <아바타>에서 제임스 카메론이 시고니 위버를 캐스팅한 뒤 그녀와 비슷하게 생긴 나비족을 만들었듯이 말이다. 그렇게 했다면 나중에 고릴라 모션을 수정할 일이 있더라도 배우들을 다시 불러 촬영하면 그만이다. 그런 기술들을 조합해 예산도 짜고, 촬영팀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막상 적용을 하려니 쉽지가 않더라. 고릴라와 사람의 비율이 다르잖나. 사람의 비율을 고릴라의 비율로 전환하는 ‘리타기팅’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현장에서 OK 테이크가 나올 정도로 배우가 연기를 해줘야 한다. 그런데 고릴라가 아닌 사람이다보니 배우가 연기를 했을 때 이것이 맞는 연기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거다. 그럼 왜 모션 캡처를 활용했다고들 말하느냐? 그 자체가 프로모션이 되는 거다. 우리도 포장을 해야 할까요, 감독님?
김용화_우린 그렇게 가지 말자. 이 땅에 진실을 알려야 해. (웃음)
정성진_그렇다고 모션 캡처를 아예 쓰지 않는 건 아니다. 모션 캡처는 블로킹으로 활용을 하면서 디테일을 잡아나가야 하는데, 디테일은 그야말로 사람의 장인정신으로 완성되는 거다. 이건 사실 자랑하고 싶은 점인데, 결국 <미스터 고> 같은 영화는 애니메이터가 어떻게 해주는지에 따라 승부가 나는 작품이다. 17명의 애니메이터들을 크랭크인 전에 1년 동안 모아놓고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프리 비주얼을 다 만들었다. 분명히 시간과 예산이 들어가는 작업인데, 이런 결정을 한국영화에서 어떻게 하느냐는 거다. 나도 VFX를 해왔지만 이런 작업은 처음 해본다. 촬영 전부터 애니메이터들이 방에 모여 고릴라 훈련을 했다. 그런 과정들이 촬영 전부터 있었고, 촬영하면서도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김용화_<미스터 고>를 끝내면 이 친구들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할 거다. 사실 모션 캡처로 해야 한다, 페이셜 캡처로 해야 한다, 광학식으로 해야 한다, 이처럼 방향을 ‘판단’하는 게 기술이다. 이러한 ‘판단’의 과정들을 아티스트들이 3년가량 월급 받아가면서 밥 굶지 않고 해봤다는 점이 중요하다. 영화 촬영도 다시 테이크를 가지 않는 게 베스트인 것처럼, 이 작품을 통해 VFX 작업 공정에 있어서 이상한 길로 돌아가지 않는 판단력을 갖추게 된다면 나는 우리나라 VFX 기술이 정말로 할리우드에 맞짱을 뜰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스터 고’는 사실 김용화 감독
애니메이팅 작업이 <미스터 고>의 핵심이라고 했다. 애니메이터들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김용화_전세계에서 크리처를 만드는 애니메이터들의 공동 과제가 바로 물리 법칙이다. 사실 카툰 애니메이터들은 그런 점을 별로 생각 안 해도 된다. 캐릭터가 뛰는 장면을 그리더라도 그냥 원하는 높이로 뛰게 하면 되고. 그런데 실사영화의 크리처를 만들어내는 애니메이터들은 중력부터 시작해서 살면서 보아온 수많은 물리 법칙들을 크리처에 적용시켜야 한다. <미스터 고>의 애니메이팅은 현재 3분의 2 정도 완성됐는데, 과학자들이 말하는 물리 법칙들에 대해 애니메이터들의 수준이 많이 올라와 있다.
정성진_한국 애니메이터 대부분이 이런 작업을 안 해봤다. 기껏해야 비행기 날리고, 건물 부수고, 불 지르는 정도? <미스터 고>를 준비하며 애니메이터를 구해야 하는데, 경력을 보니 <뽀로로> 같은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데리고 와서 1년 동안 때를 빼는 게 가장 힘들었다. 한국에서 지향하는 애니메이션이 보통 픽사, 디즈니 같은 곳의 작품들이니 애니메이터들의 스타일이 굉장히 캐릭터화되어 있다. 우선 키감, 표현감이 좋은 친구들을 선별해 <미스터 고>가 지향하는 리얼한 지점들을 인지시키며 캐릭터화된 스타일의 ‘때’를 빼는 노력을 했다.
애니메이터들이 고릴라 흉내를 내며 그들의 움직임을 몸소 체화해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들의 ‘고릴라 연기’를 위해 김용화 감독이 종종 연기 시범을 보인다고.
김용화_이건 영화가 공개된 다음에 말씀을 드려야 하는 건데…. 사실 <미스터 고>의 고릴라는 나다. 표정도 나랑 똑같고. 내게 이 영화를 왜 했느냐고 묻는다면, 고릴라라는 디지털 캐릭터의 연기에 대한 완벽한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사영화에서 내가 아무리 배우들에게 연기 시범을 보여도 그들은 내가 될 수 없다. 감독이 배우에게 연기 시범을 보인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기시되는 행동이지만 언제나 마음속으로는 연기 연출에 대한 욕심이 있다. 링링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동물이더라도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배우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준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정성진_애니메이션 디렉션을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진짜 재미있다. 성인들을 데려다놓고 (고릴라 표정을 지으며) “우우우…” 이런 걸 해보라는 건데. (웃음) 김용화 감독님의 경우 “날 봐” 하고 먼저 연기 시범을 보인다. 보스가 하니 사람들이 다 따라한다. 작업자들도 창피한 게 없다. 그러다보니 나도 오버해서 흉내를 내기도 한다. 감독님이 고릴라 캐릭터에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얘기했는데, 정말 어떤 숏을 보면 영락없이 고릴라가 감독님으로 보이는 장면이 있다. (웃음)
고릴라들이 프로야구 선수로 나오는 만큼 야구하는 장면의 구현이 중요했을 거다. 고릴라의 야구 신을 애니메이팅하면서 참고했던 야구 선수가 있나.
김용화_계속 고릴라 연기를 하다보니 야구 선수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국가대표>는 솔직히 말하면 스키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찍은 스키영화다. 물론 공부는 많이 했지만. 그런데 <미스터 고>의 경우 내가 야구광이거든. 추신수가 타격을 알려줬고 류현진이 던지는 법을 알려줬다고 할까. 그런데 링링은 고릴라잖나. 인간같이 야구를 하면 안되는 거지. 인간이 아니면 공을 칠 수 없을 텐데, 과연 인간과 고릴라의 접점이 무엇일까. 그 점을 계속 파고있다. 그 접점은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아마 말이 된다 싶을 거다.
그 장면이 기밀인가보다.
김용화_지금도 숏을 찍고 있으니 비밀까지는 아니고…. 어쨌든 어떤 스피드로 공을 던지고 쳐야 고릴라스러운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미스터 고>의 티저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 고릴라 털의 질감이 굉장히 리얼하게 다가왔다. 실제로 고릴라의 털을 반영한 건가.
정성진_일단 기술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털, 만들어내지 못하는 털의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현재 개발되어 있는 할리우드 프로그램을 도입해 털을 만들어보려다 5~6개월 만에 접었다. 이건 자체 기술로 개발하지 않으면 안되겠더라. 우선은 고릴라 털을 목표로 유사한 털들을 찾았다. 야크라는 사슴과 비슷한 동물이 있는데, 그 동물의 털이 고릴라 털을 구현하는 데 있어 비용도 저렴하고 가장 비슷했다. 그런데 야크 털을 사용해보니 너무 (털이) 뻣뻣한 고릴라가 나오는 거다. 링링은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 동물인데. 잠깐, 털을 사랑스럽게 어떻게 만들지? (웃음) 그런 고민 끝에 밍크 털을 써봤다. 그랬더니 밍크 털을 뒤집어쓴 그렘린 같은 애가 나오는 거다. 여자 스탭들은 “너무 사랑스러워” 이런 얘길 했지만 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 뒤에도 털 두께를 두껍게도 해보고, 얇게도 해보고, 꼬아도 보면서 2년간 털 연구를 했다.
사람이 아닌 고릴라가 하는 야구장면을 어떻게 구현해야 하나. 이는 <미스터 고> 제작진의 끝나지 않은 고민이다.
고릴라 링링의 대역을 연기하는 배우 김흥래와 링링의 주인 웨이웨이 역의 중국 배우 서교(왼쪽부터).
실감나는 야구장면 촬영을 위해 제작진은 해외에서 헬리캠, 레이캠 등 속도감을 살릴 수 있는 촬영 장비들을 공수했다.
아시아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이제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거쳤는데, 모두 쉽지 않았겠지만 특별히 힘든 공정이 있었나.
김용화_회사 사람들에게 미안한 게, 똑같은 일을 해도 과시할 수 있는 영화가 있다. 이건 VFX 장면이다, 하고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감독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 회사의 포커스는 반대에 가 있다. 보는 이들이 ‘저게 CG 고릴라야? 실제 고릴라 아니었어?’ 이렇게 VFX를 의식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것을 목표로 만들고 있다. 거기에서 오는 심리적 부담감이 크다.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미스터 고>에 250억원이 걸려 있는데 내가 지금 내리는 결정이 과연 맞는건지에 대한 판단이 매번 살떨리는 거다. 사실 기술적인 난관은 3박 4일이 되어도 다 못 들을 거다. 매 순간, 매 프레임이 너무 어려운 일들이라.
감독님의 말처럼 관객이 이야기에 푹 빠져들기 위해서는 마치 고릴라가 이 세계에 있는 듯 현실적인 모습으로 구현되어야 할 거다. 그런 점에서 슈퍼바이저의 어깨가 더 무거울 것 같다.
정성진_매치 무브라고,카메라의 움직임을 수치화해서 화면을 분석하는 기술이 있다. 고릴라가 합성 같아 보인다면 그건 매치 무브가 잘 안된 거라고 볼 수 있다. 전문적인 기법이라 자세히 말하기는 그렇고, 기술 컨퍼런스에 가면 자랑을 많이 할 정도로 <미스터 고>의 매치 무브만큼은 아시아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