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팬들에게 이동국은 애증의 이름이다. 누구는 한국 최고의 골잡이 계보를 잇는 선수라 치켜세운다. 기록이 그 주장을 증명하고 있다. K리그 318경기에 출전해 141골 53도움(2012년 12월 기준)을 기록하고 있고, 태극 마크를 달고 A매치 총 95경기에 출전해 30골을 넣었다. K리그, A매치 모두 세 게임당 한골을 넣은 기록만 놓고 보면 그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만큼 나쁜 스트라이커가 아님이 분명하다. 하지만 또 누구는 한국 축구의 고질병을 상징하는 선수라 평가절하한다. 단적인 예이긴 하나, 2010년 남아공월드컵 조별 예선 마지막 게임인 우루과이전 때, 골키퍼와의 일대일 찬스에서 날린 슛이 골키퍼 정면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던 장면은 두고두고 안타깝다. 골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골 결정력뿐만 아니라 약한 몸싸움, 느린 발 등 여러 이유를 들어 사람들은 그를 욕한다. 당신이 어느 쪽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든지 간에 이동국은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선수”다. 이동국 또한 자신이 “욕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일까. 이동국 선수가 쓴 자서전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를 보면 화려했던 선수 생활의 추억담보다 그가 아쉬워했던 순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해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던 일화며, 2006년 독일월드컵 직전 갑작스러운 무릎 부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 일화는 안타깝다. 엘리트 선수 출신인 그가 실패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꽤 솔직하다. “성공만 한 사람은 성공으로 가는 길밖에 모른다. 반면 실패한 사람은 왜 자신이 실패했는지 안다. 이후에는 쉽게 실수하지 않는다.” 전성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상대팀 수비수를 쩔쩔매게 하는 노련함은 어쩌면 과거의 실패가 있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 밖에도 고교 최고 유망주였던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포항 구단이 팀의 간판 선수였던 황선홍을 이동국의 집으로 보낸 비화나 이동국의 백넘버가 포항시절 선배였던 홍명보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에피소드는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