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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원작 <웃는 남자>

17세기 영국의 어느 해안, 불법 아동 인신매매단이 마스크를 쓴 한 소년을 눈밭 속에 남겨둔 채 떠난다. 소년의 이름은 그윈플렌(마크-앙드레 드롱당). 마스크는 길게 찢어진 그의 입매를 겨우 가리고 있다. 기이한 외모를 운명으로 짊어진 소년은 오갈 데 없는 자신을 받아준 우르수스(제라르 드파르디외)의 보살핌 아래 유명한 광대로 자라난다. 여동생이나 다름없는 고아 소녀 데아(크리스타 테렛)와 함께 그는 자신의 기구한 삶을 무대 에 올려 명성을 얻는다. 그렇게 그는 우르수스, 데아와 함께 성공가도에 오를 것 같았으나 여공작의 유혹에 빠져 귀족사회의 놀림거리로 전락한다. 그가 귀족 출신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고 막대한 재산이 수중에 떨어진 뒤에도 그의 처지는 별반 다를 바 없다. 그가 권력자들의 이면을 확인하고 우르수스와 데아의 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순간까지도 신은 그의 편이 아닌 듯하다.

저 유명한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영화화한 야심찬 프로젝트다. 팀 버튼도 탐냈다는 이 고전 속의 ‘웃는 남자’는 조커의 원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의회장면에서도 볼 수 있듯, 어두웠던 중세 시절에 민중의 대변자를 자처했던 이 광대의 전복적 에너지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영화 <웃는 남자>는 그 에너지를 스크린으로 온전히 옮기지 못한 듯하다. 특히 방대한 원작을 요약하는 과정에서 은밀한 로맨스와 정치 풍자극 사이의 균형을 찾지 못한 결점은 치명적이다. 영화는 전자에 과도하게 치중하느라 후자를 아주 짧고 피상적으로 다루는 데 머무르고 만다. 심지어 여공작과의 관계를 통해 그 둘을 절묘하게 겹쳐놓고자 했던 위고의 작중 의도도 거의 휘발되고 없다. 그러니 “얼굴이 괴물”인 그윈플렌을 통해 “영혼이 괴물”인 귀족들의 부패한 실상을 비춰낼 것으로 기대됐던 장면들도 힘을 받지 못한다. 충분한 공정 과정을 거치지 못한 신들은 공허하게 단순한 차원의 스펙터클에만 봉사하고 있다.

동화적인 세트와 작위적인 연기는 조형미를 한껏 강조한다.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그림들은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결과물이라기보다 영화를 연극으로 옮긴 결과물처럼 느껴질 정도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의도한 효과였다고 하나, 그것이 영화라는 매체에 적합한 전략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시대를 반영하기 위해 동원된 사실주의적 묘사를 간소한 그림으로 환원해버린 방법이 이 영화의 감상에 풍요보다 빈곤을 가져다주고 있기 때문이다. 제라르 드파르디외를 제외한 중요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에 있어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각색, 프로덕션디자인, 촬영, 편집, 연기 등 많은 측면에서 쉬운 번역의 길을 모색하다 잘못된 길에 들어선 영화 같다. 그 모든 여백을 관객은 소설로 메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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