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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품고 있는 생명의 소리 <모래가 흐르는 강>
이주현 2013-03-27

도롱뇽의 친구를 자처했던 지율 스님이 4대강 사업과 관련한 환경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모래가 흐르는 강>은 천성산을 내려와 내성천 가에 텐트를 친 지율 스님이 4년여간 내성천 일대의 변화를 기록한 작품이다. 지율 스님은 처음부터 한편의 영화를 염두에 두고 기록작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런 자막이 흐른다. “2008년 12월, 4대강 뉴스를 보고 산에서 내려와 물길을 따라 걸으며 무너져가는 강의 변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수해 예방, 수자원 확보, 경제 발전 등 정부의 화려한 구호와는 정반대로 내 눈이 보고 있는 것은 무너지고 파괴되는 섬뜩한 국토의 모습이었다.” 언젠가는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아니 이미 상당 부분 훼손된 내성천의 모습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율 스님은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었다.

4대강 공사장을 둘러본 지율 스님은 곧 낙동강의 지천인 내성천으로 향한다. 내성천의 상류엔 영주다목적댐이 건설되고 있다. 영주댐 공사는 4대강 사업의 핵심 사업 중 하나로, 2009년 12월 착공을 시작했다. 지율 스님이 수몰예정지구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곳에서 지율 스님은 평생 마을을 떠나 살아본 적 없다는 할머니들을 만난다. 감자밭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하고 있다. 하루빨리 이주하라는 경고의 의미로, 누군가가 트럭으로 감자밭을 쓸어버린 모양이다. 뿌리 뽑힌 감자를 다시 밭에 심으면서 할머니는 푸념과 한숨을 내뱉는다. 500년 된 마을의 당산나무는 일찌감치 잘려나갔다. 90년 역사를 자랑하는 초등학교도 곧 물속에 잠길 운명이다. 그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뛰놀고 있다.

<모래가 흐르는 강>은 단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지율 스님은 거대한 토목공사의 이면을 서툰 방식으로나마 성실하게 들춰낸다(성실하게 기록하는 것이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래가 흐르는 강>은 새삼 일깨워준다). 10억원을 들여 작성했다는 영주댐 환경영향평가서의 기초 정보 누락과 왜곡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꼼꼼히 짚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와 대기업이 합심해 벌이는 토목공사가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비포&애프터’로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은 꽤 효과적이다. 낙동강 제1비경인 경천대 강변이 4대강 공사로 어떻게 망가졌는지, 고아습지와 해평습지는 또 어떻게 훼손됐는지 지율 스님의 카메라는 여실히 까발린다. <모래가 흐르는 강>을 본 뒤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운운하기는 힘들어질 거란 얘기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은 강물 소리로 채워져 있다. 그 맑은 강물 소리는 영화 사이사이 등장하는 포클레인과 덤프트럭과 전기톱이 내는 소음과 대비를 이룬다. 지율 스님은 강물이 품고 있는 생명의 소리를 귀담아듣는 것이 절망을 희망으로 돌려놓는 첫걸음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끝까지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지는 않는다. 지율 스님은 “4대강 사업은 사회 전체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사업이었다”고 얘기한다. 원망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율 스님은 이번 일을 계기로 “모래가 흐르는 놀라운 강이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언젠가 강이 스스로 회복할 거라는 믿음을 드러낸다. 그 차분하고 희망적인 시선이 <모래가 흐르는 강>의 미덕이다. 잘 정돈되지 않은 이야기와 잘 정제되지 않은 영상이 영화에 대한 몰입을 간혹 방해하지만 <모래가 흐르는 강>의 진심에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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