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인가, 1985년인가에 디스켓에다 저장해놓았던 게 분명한 내 작품 <푸코의 진자>의 첫 번째 버전을 절망적으로 찾다가 결국 실패한 일이 있어요. 타자기로 쳐놨더라면 그것은 아직 남아 있을 텐데 말이죠.” <책의 우주>(2011)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컴퓨터와 같은 인공지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 같은 책에서 대담자인 장 클로드 카리에르 역시 우리는 “5세기 전에 인쇄된 텍스트를 아직도 읽을 수 있지만” “몇년도 안된 카세트테이프나 시디롬은 더이상 읽을 수도 볼 수도 없다”면서 테크놀로지의 불완전성에 대해 성토한다.
3월20일, MBC, KBS, YTN 등 주요 방송사 전산망에 사이버 테러가 자행됐다. 북한의 소행인지, 추가 공격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큰 관심도 없다. 다만, ‘해킹 폭탄’을 맞은 뒤 전화로 기사를 불러야 했던 기자들의 짜증과 PC방에서 원고를 마감해야 했던 작가들의 탄식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수백대의 PC가 철저히 망가졌고, 그 안에 담긴 데이터도 완전히 망실됐다. 그들은 아마도 에코와 카리에르의 분노를 절감할 것이다. 외장하드가 망가져서 용산에 갔다가 복구 불가능 판정을 받고 엉엉 운 독자들이라면, 역시 그 마음 알 것이다.
두달 전, 상수동으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씨네21> 서버도 망가졌다. 취재/편집/교열 기자들이 기사를 확인할 수 있는 데스크 관련 프로그램이 오류를 일으키더니 결국 서버 전체가 주저앉았다. 불순 세력의 외부 공격이라면 뭐라 떠들기라도 하지. 서버 노후로 인한 자폭이었다. 마감 작업의 차질보다 더 큰 손실은 <씨네21>을 거쳐간 수많은 동료들이 매주 내놓은 아이디어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예전 것 ‘우라까이’하지 말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포맷의 기사로, 독자들과 만나라는 높은 님의 뜻일까.
☞ 밥 먹고 수다 떨다 이번 사이버 대란을 만들어낸 이들이 북한이 아니라 컴퓨터를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겠느냐는 음모론에까지 이르렀다. 뭐, 그럴 리가 있겠는가. 헌 노트북 잡아먹는 착한(?) 악성코드야. 우리 서버 공격 마라. <씨네21> 기자들 노트북 다 새 거다. 덧붙여, 링링 배양에 힘쓰고 있는 <미스터 고 3D> 제작진도 악성 코드 조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