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겨울이었다. 아랫녘에서 올라오는 청매 소식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고맙게도 ‘기필코’ 와주었다. 눈알만 한 잔 하나를 들고 꽃나무 아래로 찾아들어야 하는 새봄. 꽃나무 아래에서 잔술을 마시면서 이 봄에 나는 아마 구시렁거리겠지. 옷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를 국가가 통제하는 시대가 다시 도래했구나. 영화 <26년>의 Mr. 전 대사가 떨어진 꽃잎들 위로 쿠당당,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한테 감정이 별로 안 좋은가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그러니 나, 지금, 숨 쉬기 답답한 게 맞다. 직접 당해보지 않아도 한국의 70년대가 어땠는지 알고 있으므로. 바야흐로 무서운 시절의 도래를 직감하며 오늘은 가볍게 말해보련다. “슈가맨, 어서 와줘, 이 풍경은 지겨워. 눈에 가로등 빛을 받은 아이야, 더 나은 걸 찾아나갈 준비를 하려무나!”
긴 겨울을 견디면서 내가 본 영화 중 ‘진짜 봄’을 꿈꾸게 한 가장 아름다운 영화는 <서칭 포 슈가맨>이었다. 자기 삶을 사랑하는 자의 따뜻한 진정성이 살아 있는 로드리게즈의 목소리……. 충격적인 방법으로 자살한 요절 가수로 알려졌던 로드리게즈, 그는 평생 성실하게 노동자로 살았다. 오물 푸는 일을 하면서도 일상의 품격을 챙길 줄 안 그는 자신의 일을 중요한 제의처럼 생각했고 날마다 최선을 다했다. 주변에 널린 흔하고 비루한 것을 빛나는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일상의 혁명을 도모하면서. 그는 ‘돈과 명예’를 성공이라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실패한 사람이지만, 삶의 아름다움을 성실하게 깨어서 누린 ‘진짜 성공’을 안 사람이었다.
나는 꽃나무 아래에서 중얼거린다. 슈가맨을 찾을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의 희로애락, 그 속의 위대함을 경청할래.
저 오래된 구닥다리 영웅들이 지겨워. 저 화려한 ‘성공 멘토들’도 지겨워. 나는 나의 행복을 찾을 테야. 슈가맨 어서 와. 우리 함께 ‘진짜 성공’을 이야기하자구.
얼마 전 쌍용차 대한문 농성장이 불탔다. 불탄 농성장을 철거하겠다는 새누리당 중구청장의 명령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거기엔 삶에 대한 사랑과 성실성으로 일상에 단단히 발을 붙인 로드리게즈들이 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해고당한 이웃들과 함께 그곳을 지켜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봄소식을 들었다. “불타버린 농성장을 정원을 만들어요!” 아, 농성정원! 이런 상상력이야말로 ‘진짜 성공’, ‘진짜 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 “농성정원으로 갈 테야요. 씨앗을 함께 뿌리고 꽃을 심고 시낭송을 하며 놀겠어요. 오 예!” 대한문 ‘농성정원’은 3월 한달 매주 일요일 해님 계시는 동안 쭈욱 계속된다. 읽고 싶은 책, 함께하고 싶은 노래와 ‘삼월의 일요일들’엔 농성정원에서 놀아봄이 어떠할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