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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시인의 날들
이다혜 2013-03-21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 마음산책 펴냄

프로빈스타운은 지명 이상의 울림을 갖는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이 마을에는 직선으로 뻗은 도시의 건물과 사물들 사이에 머무르는 인간의 풍경을 그린 화가 에드워드 호퍼가 살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세월>의 마이클 커닝햄은 이곳에 살며 예찬론 <아웃사이더 예찬>을 썼다. 유진 오닐, 노먼 메일러, 테네시 윌리엄스, 마크 로스코가 모두 이 마을의 거주자였다. 하늘과 땅과 바다를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어서, 그리고 최소한의 삶에서 예술적 폭발력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동료 예술가들이 있어서 칭송받는 땅이다. 시인 메리 올리버 역시 그 땅의 예찬론자다.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완벽한 날들>은 그 특유의 분위기에서 탄생했다. 자연으로부터 길어올리는 삶과 예술의 공명과 리듬에 대한 사색이 단어들에 고여 있다.

역사를 만드는 격렬한 활동보다는 사색에 잠기고 작품도 구상할 수 있는 길고 쉬운 산책이, 흰 눈 덮인 험한 산봉우리보다는 완만한 초록의 산이 좋다는 메리 올리버지만 세상은 그것만으로 충분한 곳이 아니다. “문제는, 삶에서든 글쓰기에 있어서든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혹독한 날씨는 이야기의 완벽한 원천이다. 폭풍우 때 우리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고,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기쁨을 느낀다.” 그러하니 역경과 고난이 예찬의 대상인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평온을 구가하는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겉모습의 베일 아래 숨은 신비를 발견하고 감각할 수 있다. 그녀의 시는 그렇게 생을 얻는다.

<완벽한 날들>에는 운문과 산문이, 산문과 운문이 산 옆 바다, 바다 너머 하늘처럼 이웃해 실려 있다. 내성적이고 야심찬 삶에 대한 욕망, 모든 것이 머지않아 다른 모든 것이 된다는 체념어린 받아들임, 너새니얼 호손의 일생과 작품세계를 돌아보며 반추하는 나의 가능성,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언어의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