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 감독이 관객에게 뉴욕을 꿈꾸게 만들었다면 오멸 감독은 보는 이가 제주를 앓게 만든다. 그의 제주는 늘 ‘웃프다’. 인물이 처한 상황의 비루함은 여유로운 삶의 리듬과 유머로 전도되고 그 누구도 일방적인 동정을 갈구하지 않는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제주 4.3 사건을 ‘제사’(祭祀) 형식을 빌려 스크린 위로 소환한다. 작품은 ‘신위-신묘-음복-소지’라는 소제목으로 분절된다. 하지만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살고 싶었는가’이다. 감자의 제주 사투리인 ‘지슬’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숨죽이며, 달리고, 항거하고, 배반하면서까지 살아남고 싶었던 이들의 삶에 대한 열망을 응축하고 있는 상징물이다. 그들은 집을 떠나 캄캄한 동굴에 숨어서, 죽은 어미의 품에서 꺼내온 지슬을 먹는다. 그리고 삶의 고통이 무색하게 지슬은 늘 달다.
감독은 희생자의 범주를 제주도민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모든 이가 역사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이다. 민간인을 상대로 발포를 할 수 없었던 박 상병은 기합을 받으며 동료와 투덜거린다. “우리가 지금 폭도들 때문에 이러고 있냐? 명령 때문에 이러고 있지.” 잘못된 명령은 총알을 맞은 이의 생명을 앗아가지만 총부리를 겨눈 자의 영혼도 말살시킨다. 군인들은 죄책감에 떨고 있거나 분노와 광기로 그것을 외면한다.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설화’를 차용한 서늘한 결말은 비극적 역사를 신화적 차원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기 위해 우리가 직시해야 할 과거가 무엇인지를 일러준다. 이 작품은 역사를 기록하고 반성적으로 사유하기 위해 영화가 해야 할 역할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의미와 성찰이 있지만 무겁지 않고 유머러스하며 심지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