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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회피 말고 해법
이영진 2013-03-18

2008년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보수 성향의 국회의원들은 강한섭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도마에 오른 건 영진위의 영화단체사업지원이었다. “국민들의 세금을 특정 이념 지향의 운동단체들에 지원하는 격이어서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영화단체사업지원이 실제로는 이념적 조직들의 후원금으로 전용된 의혹이 있다.” 임기를 시작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던 강 전 위원장은 당시 “지나친 쏠림 현상을 막겠다”고 답변했다. 강 위원장의 다짐은 곧 마녀사냥의 광풍으로 몰아쳤다. 2009년 영화단체사업지원에서 인디포럼, 전북독립영화제, 노동자뉴스제작단, 인권운동사랑방,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이 내놓은 사업은 모조리 제외됐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단체들에 단돈 10원도 주지 말라”는 엄명을 충실히 따른 결과였다. 이같은 상황은 강한섭 위원장에서 조희문 위원장으로, 조희문 위원장에서 현재 김의석 위원장으로 교체되는 동안에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2011년 영화단체사업지원에서 배제된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지난해 5월 또다시 탈락하자 “심사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 심사 과정을 기록한 회의록 등 심사 자료 공개를 요청한다”고 영진위에 항의했고, 몇 차례의 협의 끝에야 어렵게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아예 분란의 소지를 없애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난 5년 동안 끊임없이 잡음이 났던 영진위의 영화단체사업지원은 새 정부 들어서 단계적으로 폐지될 예정이다. 올해 영진위의 영화단체사업지원 예산은 6억4천만원으로, 2012년 8억원에 비해 20% 삭감됐다. 중요한 건 2013년의 예산 삭감이 한시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독립영화제 관계자는 “영진위의 단체사업지원 예산은 2013년부터 20%씩 삭감되는 일몰제를 적용해 5년 뒤에는 완전히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영진위는 독립영화제작지원 예산을 5억원 가까이 증액하기로 했다. 독립영화인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 및 김기덕 감독의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에 따른 여론의 압박이 이같은 조치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독립영화가 만들어져도 이 독립영화를 상영할 독립영화제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과 지역의 독립영화인들 대부분이 영진위의 단체사업지원을 받아 영화제를 치르고 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와 영진위는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오멸 감독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와 같은 독립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라고 여겨선 안된다. 독립영화 지원 의지가 생색내기가 아니라면, 입맛에 맞는 독립영화만 지원하겠다는 심보가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비뚤어진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